슬픔 한 짐 내려놓고서 - 임현택
무심천갓길, 쓸쓸히 서있는 플라다나스 빈 가지에 드문드문 달려있는 마른 낙엽이 한해의 끄트머리임을 알리 있다. 차창너머로 고개를 돌리지만 영구차에 흐느끼던 여인의 모습이 지워지질 않는다. 낙엽이 떨어져 지듯이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는 모습은 쓸쓸하다.
국악 사물 발표회가 있는 날이다. 공연차량이 예술의전당 앞 교차로에서 장의 차량과 나란히 신호를 받고 있었다. 공연을 앞둔 단원들은 상여를 만나니 길운이 있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반면 차창에 힘없이 기대선 유족, 풀어헤친 머리카락사이로 슬픔이 엿 보인다. 한쪽은 곡을 해야 하고 또 한쪽은 풍악을 울려야 하는 묘한 만남, 요람과 황천강의 아이러닉함이다.
어렴풋한 어릴 적 기억이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은 지금과 사뭇 다른 장례였다. 부모상을 당하면 딸이 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마당을 돌면서 곡을 하면 왕생극락한다는 어르신들의 한마디에 어머니는 ‘그곳이 불 속인들 못 뛰어들까!’ 무쇠솥뚜껑을 머리에 이고 통곡을 하며 집을 돌았다. 딸의 곡소리는 하늘을 울렸다. 며느리의 곡소리는 대문 밖을 나서지 못한다 하지 않던가! 못다 한 효,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어머니의 눈물은 옷고름을 타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했다. 통곡소리는 하늘도 울고 땅도 울렸다. 절로 문상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음은 당연했다.
삼베두루마기에 누런 건을 쓴 사위인 아버지의 모습과 어머니의 짚 새끼 허리띠며 머리띠가 무섭다고 벗어버리라고 투정을 부린 나였다. 까실까실한 아버지 턱수염, 누런 상복에 왜 눈물을 흘렸는지 알 수 없었고, 어른들이 딱해하면 혀를 차면 그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부모님의 그런 모습과는 달리, 상중 내내 멀리 있는 친척들의 방문과 오만가지의 낯선 제사음식을 먹느라 마냥 즐겁기만 했다. 큰 잔치인양 푸짐하게 차려진 음식과 많은 조문객들의 방문에 나는 그저 신이 났었다. 오히려 슬픔보다는 또래 친척들 만남이 행복해 놀기에 열중이었다. 철부지인 우리를 어머니가 부둥켜안고 흐느낄 때면 외할머니 죽음보다는 어머니가 운다는 사실에 그저 덩달아 같이 울었다.
발인 날, 사위 달구질을 하면 왕생극락한다하여 아버지 얼굴에 까맣게 숯을 바르고 상여(喪輿)에 태워 가직 종구잡이가 요령을 흔들어댄다. ‘저승길 멀다한들 어느 누가 따라가랴, 부모형제 많다한들 누가 대신하랴, 살아평생이 한 못 풀고 원망해서, 불쌍허고, 가련허고, 애절허고도, 처량허지 어허 어와...’ 상여 틀에 칭칭 동여맨 들메끈을 어깨에 짊어진 상여꾼들은 어서 가자고 재촉했고, 꽃상여 매달려 오열의 눈물을 쏟아 내는 어머니의 울음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장지까지 가는 내내 파도치듯 상여를 흔들어 댔고 작은 도랑을 건널 때나 언덕을 오를 때면 사위는 노자 돈으로 저승길을 열어야 했다. 청년시절에 양친을 여의고 장인어른을 친부모 이상으로 모셨으니 그 슬픔이 여북할까. 파도에 쏠리듯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상여 위에서 아버지의 검은 눈물은 누런 상복을 얼룩지게 했다.
한 평 남짓한 나무관 속에 구천(九泉) 너머 저승길로 가는 화려한 꽃상여에 목 놓아 매달려 우시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무심한 상여는 고샅을 빠져 나가 버린다. 어서 가자고.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그리 재촉하던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상여꾼들의 달공 소리는 개울 건너 산 속으로 울려 왕생극락을 빌며 하늘 끝에 울려 퍼졌다. 대문턱을 넘어서지도 못하는 어머니는 멀어지는 *회다지 소리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또 털 석 주저앉으셨다.
속세의 연을 끊으려 온몸 뒤틀며 불 속처럼 녹아내리는 어머니, 먼발치 상여를 뒤따라가는 연기 속에 몸도 마음도 흔적 없이 버리고 그저 정갈한 수의 한 벌만 입고가시는 외할머니의 저승길. 간간이 바람에 묻어온 달구질 소리에 어머니는 옷고름우로 눈물을 훔친다. 이승과 연을 끊으려 문지방 앞에 깨고 넘어선 바가지, 널브러진 바가지 쪼가리들 속에 주워 올린 수 십 년 흔적을 치마폭에 묻고 섧게도 우 섰었다.
예술의 전당 교차로에서 만난 장의 차량, 삶과 죽음의 연의 끈을 길게 묶은 검은 리본을 두른 장의 차량이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화장장으로 바삐 서두른다. 머리 풀고 하늘로 올라가는 화장터의 영혼이나, 그 옛날 시골 산자락에 허물어진 벽에 온갖 슬픔을 간직한 요령소리나 공허한 넋은 매 한가지다.
한 생명의 탄생은 축복이며 기쁨이라면, 한 생명의 종말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슬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전의 그 복잡하고 긴 장예절차보다 현대의 간편한 장례식이, 슬픔이 더 짙다거나 혹은 덜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한 생의 마감에 대한 의식이 가볍게 생각되는 것은 왜 일까?
무성한 이파리를 다 떨어낸 무심천 뚝 플라타나스의 빈가지 사이로 하늘을 바라본다.
슬픔 한 짐 내려놓고서.
* 회다지 - 달구질이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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