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선비정신이 깃든 환유적 시를 읽고
타임즈 포럼
2011년 11월 22일 (화) 반영호 시인 webmaster@cctimes.kr
사람은 누구나 가슴속에 스위트홈(sweet home)이 있다. 분주한 일상에서도 잊히지 않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어 그것을 수시로 기억하고 회상한다. 다른 누구도 알 수 없고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오직 자신만의 마음의 고향이다. 사람의 근원적 속성에서 비롯되고 자리 잡게 되는 고향은 연어의 본향과도 같은 것이어서 이방인의 가슴에 남아 회귀의 꿈으로 절절히 들끓고 있다. 그것은 돌아가고 싶은 시간이기도 하고 그리움이 태어나는 공간이기도 하며 자신만의 은밀한 희망이기도 하다.  

김동엽 시인이 펴낸 『개골산의 아침』이라는 시집을 읽었다. 시집에는 시인의 스위트홈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시집의 제목도 『개골산의 아침』이지만 지명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시집은 일찍이 보지 못했다. 성인봉, 옥천, 금구천, 울목, 남산, 독도, 구절사, 갯골, 노고단, 백두산천지, 사량도, 등용폭포, 여심이골, 두만강, 구룡연, 상팔담, 고리산, 난계국악당, 내연산, 십이폭포, 신흥동, 울산바위 등 시의 소재로 등장하는 유명 무명의 수많은 지명들은 시인의 마음속 그리움의 대상들이자 시인이 여행을 즐겨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집의 시들은 시인의 발로부터 출발해서 눈을 거쳐 가슴 안에 고여 있다가 다시 솟아난, 경험의 샘터에서 퍼 올린 여행의 기억들이다.  

얼마 전에 읽은 한기채의 『지명을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라는 책을 떠올렸다. 저자의 견해에 따르면 성경은 구체적인 장소와 구체적인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그들이 놀라운 일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곧 성경이다. 그 시대 삶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생생한 하나님의 가르치심과 사랑과 돌봄의 이야기가 인물, 장소와 사건으로 만나 바로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하나님의 구속사로 펼쳐진다는 것이다. 이 책은 ‘지명’이라는 키워드로 성경 속의 역사와 주요 사건을 보여주는데, 성경에 나오는 모든 장소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지명에는 지명에 얽힌 사건이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 지명들을 따라가다 보면 성경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게 된다. 성경 속의 주요 지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와 구약의 주요 사건들을 풀어내면서 입체적으로 성경을 읽어내는, 일종의 ‘지명강해서(地名講解書)’이다. 

김동엽의 시집 『개골산의 아침』은 이방인들의 가슴을 또 한 번 울린다. 여행가가 쓴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지명을 읽으면 성경이 보인다”고 말하는 한기채와 같이 지명으로 하여금 마음의 스위트홈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환유적 등가물이지만 이 또한 현실적인 욕심 없이 살아가는 고고한 선비정신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것 하나조차도 내 것 없는 빈 허공’은 무소유의 일면이기도 하다. 소유욕을 버린 자리라는 게 어떤 자리일까. 모든 불행은 무언가를 가지려는 욕망으로부터 비롯되지 않는가. 가지면 행복해지는가. 아니다. 더 큰 욕망의 노예가 되어 더 큰 것을 가지려는 욕심으로 살아가니 불만과 불행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속의 삶이다. 어쩌면 시인은 현대인들의 불행이 이와 같은 지나친 소유욕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이를 극복하고 행복에 이르는 길은 우리 전통의 선비정신을 되찾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선비정신이 내면에 잠재되어 있으면서 여행을 좋아하는 김 시인은 언뜻 방랑시인 김삿갓을 연상케 하는 풍류객 같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생활 시인이었고, 문학적으로도 모든 욕망을 초월한 세계적인 선(禪) 시인인 김삿갓은 개화 초기의 시대적인 희생자인 동시에, 한평생을 서민들 사이에서 그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살아온 서민 생활의 거룩한 고행자였다.

한 권의 책 속에서 인생을 생각하며 늦가을의 깊은 서정에 취해 본다.

기둥시계 / 목성균

 

 

 

기둥시계가 언제 어떤 경위로 없어졌을까.

우리 형제들이 죽지에 힘 오른 새 둥지를 떠나 듯 다들 집을 떠나고 할머니도 세상을 뜨시고 대주이신 아버지가 풍을 맞으신, 유수 같은 세월의 어디 즘에서 시계는 멈추었으리라. 시간을 멈춘 시계는 얼마 동안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벽에 걸려 있었을 것이다.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시계가 멈춰 선다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지만 사실은 시계가 직무를 유기한 것이 아니고, 시계가 유기를 당한 것이다. 시계야 어차피 사람이 관리하는 문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시계의 태엽이 다 풀린 상태를 할머니는 밥이 떨어졌다고 하셨다. 시계가 멎은 것은 밥이 떨어졌을 때뿐이었다. 시계가 기아선상에서 헤매는 건 시계 불알소리를 들으면 금방 알 수 있었다. 뚝-닥, 뚝-닥---.’ 힘차게 불알을 흔들면 방귀 푼 어치나 뀌고 사는 양반 행차소리 같아서 안심이 되지만 ‘뚜-우-다-악, 뚜-우-다-악---.’ 하고 사흘 굶은 남산골 샌님 나막신 끄는 소리 같으면 조만간 멈출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얼른 밥을 줘야 한다. 미처 밥을 안 주면 시계가 멎는다.

 

우리 시계가 멎은 것은 시계불알 흔드는 소리에 귀 기울일 식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농업가계(農業家系)인 우리 집의 윗버들미(柳上里)시대가 끝난 것을 의미한다. 어느 날 고물 장수가 찾아와서 “고물 삽니다” 하자 내 노모께서 지전 몇 푼에 시계를 넘겨주셨지 싶다. 돈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는 당신의 시대를 정리하듯 시계를 치우셨을 것이다. 시계가 없어진 내 짐작이다.

 

우리 집 기둥시계는 ‘마림바’처럼 아름다운 괘종소리를 냈다. 기둥시계의 괘종소리는 현재 시간을 알리는 음향신호(音響信號)다. 당연히 공신력이 생명이다. 그러나 우리 기둥시계는 공신력에 구애받지 않고 살았다. 시계가 한량처럼 시간에 초연한 시건방진 삶의 태도를 어디서 배웠느냐고 따질 수는 없다. 우리 식구들의 시간관념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들은 시계가 정확한 현재 시간을 대는지 안 대는지 통 관심이 없었다. 농사일이 그렇듯이 날이 새면 일하고 해가 넘어가면 일을 끝냈다. 그 사이의 구체적인 일머리들이 널려 있긴 하지만 시간에 맞춰 분배할 필요도 없었다. 꾸준히 당면한대로 일을 하면 되었다. 시간이 존재하는 한 부지런한 자연상태의 삶이 같이 존재했다. 시계도 그랬다. 보정(補正)이 필요한 시간의 오차를 꾸준히 누적했다.

 

문 창호지에 붐 하게 여명이 물들 때 시계가 아홉 시를 쳤다면 망발이지 시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 식구들은 종소리에 날이 새기라도 한 것처럼 감동해서 ‘날 새는구나’ 했다. 날이 새면 무슨 수 나는 일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뼈 힘드는 노동의 긴 하루의 시작일 뿐인데. 그 시작 시간이 여섯 시든 아홉 시든 아무 상관없다. 종소리의 아름다움이 시작의 사기를 진작시킬 뿐이었다.

 

나는 “째각, 째각….” 초침이 건강한 숨소리같이 정확한 초박형(超薄型) 손목시계를 찬 사람을 경원했다. 시간의 육백 분의 일 초까지 염두에 두고 사는 산술적 명민성이나 교활한 순발력의 출중함을 보는 것 같아서였다. 나는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지 않는 사람이 좋았다. 시간을 안 맞추고도 살 수 있는 좀 무지하고, 소박하고, 솔직한 사람 같아서였다. 그러면서 나는 손목시계를 차고 살았다. 좀더 박형이고, 정확하고, 금장(金匠)을 한 시계를 차고 싶었다. ‘삶이란 가증스러운 이중인격의 출중한 연출이다’라는 삶의 괴리(乖離)로 시계의 노예가 되어 살았다. 지금은 시계를 안 찬다. 필요가 없다. 자유의 반을 얻은 줄 알았는데 아니다. 자유의 반을 잃은 데 불과하다. 시간에 도외시 당한 삶은 형기를 채우는 수형자처럼 부자유하다.

 

우리 기둥시계는 혼신을 다해서 맑고 깊은 울림소리를 생산했다. 굵기 1밀리미터 정도 내외되는 강철인지 구리 철사인지를 원형으로 돌돌 말아서 만든 명기(鳴器)를 도토리 알 만한 놋쇠로 된 공이로 처서 종소리를 냈다. 어쩌면 그렇게 깊고 맑은 울림소리를 내는 종을 달았을까. 깊고 맑은 울림소리를 얻으려고 봉덕사 대종을 만들 때 아기를 시주 받아서 쇳물이 끓는 가마에 넣었다는 말이 생각 날 정도였다. 일개 기둥시계의 종소리를 국보의 웅혼(雄渾)한 종소리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경지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종을 만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생각 들었다.

 

기둥시계는 우리 식구들이 제가 알려주는 시간에 유의한 적이 없어도 제 존재가치를 무시한다고 사보타주를 한 적이 없다. 가끔 시간을 멈춘 것은 우리 식구가 밥을 굶겨서 탈진해 쓰러진 것이지 고의적인 태업(怠業)은 아니었다. 태엽만 감아 주면 아무 불평 없이 ‘뚝-닥 뚝-닥-’ 꾸준히 시간을 따라갔다. 늦었다고 뛰는 법도 없고, 이르다고 쉬는 법도 없이 일정한 걸음으로 꾸준히 세월을 걸어갔다.

우리 기둥시계 바늘이 시간을 돌리는 일은 꼭 소가 연자매를 돌리는 일과 같았다. 눈을 지긋이 감고 되새김질을 하면서 꾸준히 연자매의 멍에를 지고 확을 도는 소의 끝없는 노역과 고삐를 잡고 그 노역 뒤를 따라 도는 방아찧는 사람의 시간에 초연함 같아서 경외스러웠다. 내 선대 어른들, 아버지 할머니 증조부 등등-, 저 청산의 일각의 무덤 아래 드신 생전의 삶들처럼.

 

식구들이 다 들에 나간 빈집서 울리는 기둥시계의 종소리는 너무 그윽해서 새삼 삶을 돌아보고 연민을 느꼈다. ‘뗑’하고 한 번 친 다음 다시 ‘뗑’하고 치는 간격이 좀 긴 편이었으나 그 간격을 비우지 않고 여운이 맑고 깨끗하게 이어졌다. 안방에서 건넌방으로, 부엌으로, 외양간으로, 뒤꼍으로, 부엌궁둥이로, 종소리의 여운이 잦아 들고나면 집 어디선가 “뚝-닥, 뚝-닥-” 하는 맥박소리가 살아났다. 종을 치기 전에는 안 들리던 기둥시계의 맥박소리가 마치 생명을 과시하듯 분명하게 들려 왔다. 그 소리는 우리 집, 초가삼간이 살아서 숨쉬는 소리 같았다. 힘에 겨운 짊을 지고 침착하고 진중 하게 비알밭 머리를 돌아서는 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졌다.

 

툇마루에 앉아서 기둥시계의 맥박소리를 들으면 눈도 밝아져서 앞산 비알밭에서 일을 하던 농부 내외가 일나서 밭머리에 서 있는 고욤나무인지, 감나무인지, 가죽나무인지, 그늘을 지운 나무 아래로 가서 나란히 앉는, 쌍가락지 같은 삶의 애락도 보였다. 뭐니뭐니 해도 우리 식구 중에서 기둥시계를 가장 사랑하신 분은 할머니다. 할머니는 깊은 겨울 밤 명을 잤다가 기둥시계가 종을 치면 물레를 돌리던 손을 멈추시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다. 기둥시계의 종소리가 할머니의 유일한 문화였다. 정갈하고 깊고 긴 여운에 할머니는 물레질하시던 손을 멈추고 눈을 지긋이 감으셨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심취한 고급 청중의 감동과 다를 바 없는 할머니의 감동을 보고 나는 우리 기둥시계의 실존가치는 시간이 아니고 소리라는 결정적 착각에 이르게 되었다. 시계의 종소리가 뒷산 솔바람 소리 속으로 자자 들면 ‘우후후’ 하고 밤 솔부엉이가 울었다. 나는 알몸으로 겨울잠 자는 산짐승처럼 이불 속의 쾌적한 온기에 웅크리고 들었다. 일정한 세월의 발자국소리 같은 ‘뚝-닥 뚝-닥’하는 시계불알 소리와 내 심장 박동소리와 솔부엉이 소리와 높은 산봉우리를 스치는 겨울바람소리의 협주곡을, 그 생명의 실감이 그저 고맙고 행복하기만 했다.

 

할머니는 기둥시계가 굶어서 불알을 축 늘어트리고 멈추면 어머니에게 불같이 역정을 내셨다. 어머니는 별 게 다 시집살이를 시킨다면서 얼른 시계 밥을 주시고, 시간을 맞춰 놓기 위해서 현재시간을 보려고 마당에 나가 서서 이마에 손을 대고 해가 어디쯤 갔는지 하늘을 쳐다보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그리니치’ 표준시간이 무색할 지경이어서 감히 어머니가 새로 맞춘 시간에 대해서 맞느니 안 맞느니 아는 체를 하지 못했다. 어머니가 맞춰 놓으신 그 시간이 아무도 이의할 수 없는 정확한 현재였다.

그 기둥시계 어디가 있을까. 싸락눈 분분한 겨울밤 바람소리를 차분히 진정시켜 주던 ‘뚝-딱 뚝-닥’하는 시계불알 소리 들린다. 깜깜한 어둠 속의 납작한 초가집에서 울리는 맑고 깊은 시계의 종소리에 분분하던 싸락눈이 소담스러운 함박눈으로 바뀌던 겨울밤이 보인다. 그 시계 지금 어느 토속음식점의 장식품으로 걸려 있을까. 눈 덮인 청산 일각에 소리처럼 묻혀 있을까.

빛과 거울 / 법정

 

 

 

오후의 입선(入禪)시간, 선실(禪室)에서 졸다가 대숲에 푸실푸실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혼침(昏沈)에서 깨어났다. 점심공양 뒤 등 너머에서 땔나무를 한짐 지고 왔더니 고단해던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간 지 언제인데 아직도 바람끝은 차고 산골에는 이따금 눈발이 흩날린다.

 

아까 산길에서 비전(碑殿)에 사시는 성공(性空) 스님을 만났다. 80 이 가까운 노스님이 지게에 한짐 가득 땔감을 지고 가시는 걸 보고,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온유한 수행자의 모습에 숙연해졌다. 요즘은 밥짓는 공양주가 한 사람 들어와 다행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노스님들 두 분이 손수 끓여 자시면서 지냈다. 정진 시간이 되면 거르지 않고 염불 소리가 뒤골에까지 메아리친다. 비전은 염불당(念佛堂)이기 때문이다. 성공 노스님은 한때 학인(學人)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는 강사(講師)로도 지낸 바 있지만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는다.

젊은 스님들한테도 또박또박 존대말을 쓰면서 겸손을 지킨다. 이 땅에서 80년 가까이 살면 서도 아직 서울에 가보지 않았다는 흙 냄새 풍기는 인자하신 스님. 지난해 봄에는 상좌의 주선으로 제주도를 다녀오셨는데 어린애처럼 마냥 좋아라 하시면서 한라산을 오를 때는 그 걸음걸이가 젊은 상좌보다 앞서 펄펄 달리더란다.

 

큰절 임경당(臨鏡堂)에는 올해 여든 다섯 살이 되는 취봉(翠峰) 노스님이 계신다. 젊어서는 일본에 건너가 종립 대학에서 수학도 했고 몇 차례 주지 직도 맡아 지낸 노스님 인데, 근면과 단순과 청빈으로 후학들에게 몸소 모범을 보이는 대덕(大德)이시다. 스님은 사중(寺中) 물건과 개인의 소유에 대한 한계를 누구보다도 투철하게 몸에 익히고 있다.

 

한번은 감기 몸살로 앓아 누워 계실 때, 약을 달이느라 시중들던 스님이 생강을 한 뿌리 후원 원주실에서 가져다 썼다. 그걸 아시고 단박에 사다 갚으라고 하실 만큼, 공사(公私) 의 개념이 분명하시다. 주지로 계실 때에 사중 볼일로 출장시 사무실에서 주는 여비를 쓰고 나머지는 단돈 10원이 될지라도 반드시 되돌려 주었다고 한다. 요즘 사중 소임 보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중 물건을 가지고 마치 자기 개인 것이나 되는 듯이 함부로 사용하는 폐습이 있는데, 노스님의 그 같은 모범은 커다란 교훈이 아닐 수 없다. 90을 바라보는 고령임에도 법당의 조석예불과 대중공양에 거르는 일이 결코 없다. 걸핏하면 예불을 거르고 후원에서 따로 상을 차려 먹기를 좋아하는 덜된 중들에게는 마땅히 배우고 따라야 할 승가의 청정한 생활규범이다.

이런 노스님들이 계시는 산중에서 함께 사는 것을 나는 참으로 고맙고 다행하게 생각한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생활규범에 의해 둘레에 한없는 빛과 거울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한결같은 겸손과 단순한 청빈으로 그들 스스로를 구원하고 다른 사람들을 감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노스님들은 참선이 어떻고 화두(話頭)가 어떻고 견성(見性)이 뭐라고 말하는 일이 별로 없다. 그저 묵묵히 몸소 행동으로 보일 뿐이다. 대개의 경우 뭘 알았다고 자기 과시에 열을 올리는 스님들한테서는 수행자의 덕성인 그 겸손과 단순과 청빈과 온유함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슬이 푸른 오만과 독선과 아집이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진해서 자리를 같이 하게 되면 마음이 편치 않고 피곤하다.

 

선가(禪家)에 한고추(閑古錐)란 용어가 있는데, 닳아져서 무딘 송곳을 가리킨 말이다. 수행자의 경지가 원숙해져서 서슬이 밖에 드러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니 서슬이 푸른 것은 미숙함을 드러낸 것.

알면서도 그 앎에 걸려 있지 않는 성숙한 지혜가 귀하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도로써 자만한다면 그는 결코 선지식(善知識)일 수 없다. 관념의 찌꺼기인 상(相)이 있으면 진짜 수행자가 아니라고 대승(大乘) 경전에서는 입이 닳도록 말하고 있지 않던가. 수행자에게 중요한 것은 학식이나 지식이 아니라 지혜롭고 자비스런 행동이다. 종교란 회색의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자만을 가져오지만 사랑은 덕성을 길러준다.

 

투철한 안목과 번뜩이는 기량으로써 어리석음을 깨우쳐주는 명안종사(明眼宗師)의 기능도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이름 없는 노스님처럼 수행자로서 한결같이 정직하고 겸허하고 꿋꿋하게 살아감으로써 후학들에게 끼치는 덕화는 보다 더 소중하다. 사람을 본질적으로 감화시키는 것은 그럴듯한 말에 있지 않고 몸소 움직여 보이는 행동에 있다.

 

좋은 말을 한다는 것과 그 말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 사람의 행위가 그 사람의 지식보다 뛰어날 때 그 지식은 유익하다. 그러나 그 지식이 그 사람의 행위보다 크게 드러날 때 그 지식은 무익한 것이다. 진짜 수행자는 그 어떤 종파를 막론하고 앞뒤가 툭 트인 단순성(單純性)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다.

이, 생각만 해도 숙연해지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그가 크리스마스 전 단식 기간을 어떤 은둔처에서 지내고 있을 때였다. 지나친 고행으로 만년의 그는 여러 가지 병고를 치른다.

올리브 기름이 건강에 해로워 돼지기름으로 요리한 음식을 조금 먹었다. 단식이 끝날 무렵 대중 앞에서 설교를 했는데 그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나를 성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면서 헌신적인 사랑으로 여기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단식 기간에 돼지기름으로 만든 음식을 먹었음을 여러분 앞에 고백합니다."

그는 하느님께 알려진 사실을 이웃들에게 감추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영성(靈性)에 자만심이나 번뇌의 유혹이 있을 때는 즉시 그의 형제들에게 감추는 일 없이 그 사실을 고백했다. 그는 자기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머무는 은둔처나 어떤 곳에서라도 모든 사람이 나를 지켜볼 수 있도록 나는 살고 싶소. 그들이 나를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성스러운 생활을 하지 못한다면 나는 위선자가 될 것이오."

수행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을 그는 단호히 배격한 것이다. 세상에 빛과 거울이 될 이런 분들을 스승으로 섬기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구원이요 커다란 위로다. 이런 분들의 덕화가 미치고 있는 한 그 어떤 세상에서라도 인간은 절망하거나 멸하지 않을 것이다.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때

그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울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2013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이끼의 시간 / 김준현

 

 

우물 위로 귀 몇 개가 떠다닌다

검은 비닐봉지 속에 느린 허공이 담겨 있다 나는

내 빈 얼굴을 바라본다 눈을 감거나

뜨거나, 닫아놓은 창이다

녹슨 현악기의 뼈를 꺾어 왔다 우물이 입을 벌리고

벽에는 수염이 거뭇하다 사춘기라면

젖은 눈으로

기타의 냄새 나는 구멍을 더듬는, 장마철이다

손가락 몇 개로 높아지는 빗소리를 누른다 저 먼 곳에서

핏줄이 서는 그의 목젖, 거친

수염을 민다

드러나는 싹이여, 자라지 마라

벌레들이 털 많은 다리로 밤에서

새벽까지 더듬어 오른다

나는 잠든 그의 뒷주머니에

시린 손을 숨긴다 부드럽고 가장 어두운

비닐봉지 안에 차가운 달걀 몇 개를 담아

바람에 밀려가는 주소를 찾는다

귀들이 다 가라앉은 물에도

소름이 돋는 중이다

 

 

 

멀구슬 나무 이명길

 

 멀구슬 나무 -- 이명길

 

늦가을 호수는 푼푼하다물오리들의 행렬이 물 위로 미끄러지고둥치만 남은 물 버들은 잠잠히 하늘을 읽는다물속을 거꾸로 인 채 말라버린 연 대궁은 삶을 회상하듯 묵묵하다호수가 생의 지론이라도 강의 중인지 물이랑 사이로 바람을 일깨운다.

 

오랜만에 친구와 근교의 호수공원을 둘러본다활짝 열린 하늘은 새털구름마저 지웠다낱낱이 떨어지는 햇볕을 이고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호수 에움길을 벗어나 언덕 위로 발길을 옮기니 이름표를 목에 건 나무들의 표정이 각양각색이다간간이 하늬바람이 스쳐갈 때면 신록의 수다가 들리는 듯하다.

 

언덕 위로 특별한 나무가 있어 눈길이 간다멀구슬나무 줄기에 왕벚나무가 업혀 있다뻐꾸기나무라 한다나무 아래 표지판에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의 습성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설명해 두었다바람을 타고 온 왕벚나무 씨앗이 멀구슬나무의 둥치에 앉아 발아를 하여 싹을 틔운 것이다.

 

아버지는 바람 같았다하루를 집에 계시면 열흘을 밖에서 지내셨다바람처럼 매인 곳 없이 당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흘러다니셨다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안중에 없었다어쩌다 집에 오실 때도 가족보다는 손님 같아서 아버지 품에 안겨 응석 한 번 부려보지 못했다우리 남매는 아버지의 따뜻한 정을 몰라 늘 대하기가 낯설고 어려웠다그런 아버지를 떠올리면 늘 가슴 속에 모래바람이 일었다.

 

추운 밤이었다집으로 젊은 여자가 와서 아버지를 찾았다그녀는 털이 길게 누운 잿빛 코트를 걸치고 당당하게 우리 식구들을 훑어보았다그 앞에서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던 어머니는 아무 말이 없었다희미한 삼십 촉 전구 아래 두 여인 사이로 시간은 더디 흘렀다삽짝 밖 산 아래 공장 불빛이 밤새도록 시리게 반짝였다.

 

여자는 그날 이후로 방 한 칸을 차지한 채 돌아갈 생각이 없었다어머니나 우리 남매의 눈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버지의 옆자리를 차지하려 애를 썼다화려한 꽃을 피우는 왕벚나무처럼 아버지를 맞는 여자의 표정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어머니는 날마다 무너져 내리는 마음을 추스르기에도 버거워 보였다며칠 뒤 무슨 생각이었는지 아버지는 여자와 함께 집을 나갔다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아버지의 행방에 밑줄을 그었다.

 

굽어 자라는 멀구슬나무에 온 마음이 잡혔다내 힘이 미쳐도 될 것 같으면 왕벚나무를 톱질해 버리고 싶다멋모르고 뿌려진 씨지만 단박에 패버려야 멀구슬나무가 온전히 살 수 있을 것 같다하지만 둘은 이미 한몸으로 잘 살고 있다덧니처럼 아무렇지 않게 뽑아질 것이 아니어서 억지로 떼어내면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다왕벚나무를 베어낸다는 것은 부질없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여자를 안 보고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집안 행사에 가면 어디서든 여자를 마주쳐야 했다반길 수도모른 체할 수도 없었다여자는 손바람이 좋아 내가 결혼할 때는 예단 음식까지 거들었다있듯 없듯 하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한 여자가 마뜩잖았다어머니는 그런 여자를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었다그녀의 마음인들 오죽하겠느냐는 식이었다그러면서 자신의 낡아 허물어지는 등에서 억지로 여자를 내릴 생각도 않았다.

 

왕벚나무는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큼직한 꽃망울을 터트려 주변의 나무들 사이에서 으스대지만화려함은 잠시다여자에게도 왕벚나무의 무성한 잎처럼 단색의 시간이 길었다아버지는 함께하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화가 잦아지고 여자의 차림새에 까탈도 늘었다무엇 하나 반듯하지 않으면 보지 못하는 성정 탓에 곁의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여자는 나날이 위태롭고 팽팽해지는 긴장 탓인지 나이보다 쉬이 늙어갔다.

 

어머니는 여자에게 모진 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당신이 울타리를 제대로 못 지킨 탓인 양했다잠시 피었다 지는 꽃일지라도 제 구실을 마쳐야 후회가 없을 것인데 여자를 보면서 얼어 떨어진 꽃눈을 떠올리시는 듯했다미웠으나 미워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바람과 햇살에 생채기를 맡겼다입을 닫고 사는 일도 어머니 나름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었다가슴에 고여 있는 것들을 한 치 곁에서 바라보았다물 흐르듯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했으니 궁색한 변명이 될까 겁이 났는지도 모른다외로움 속에 후덕함을 껴안은 충만의 삶은 뭉그러지지 않으려는 아우성이었다마음을 내린 어머니는 성숙한 영혼을 연습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야윈 손가락처럼 잔바람에도 파르르 떨리는 멀구슬 나뭇가지를 바라본다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옷장 속에서 이름자를 연습한 파란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아버지와 우리 남매에 매여 평생을 잊고 살았던 당신의 이름을 되찾고 싶었던 것일까애를 쓴 흔적만을 남겨두고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셨다산수(傘壽)의 세월을 고이 접고 홀연히 떠나신 어머니의 위안일까멀구슬 나뭇가지의 떨림이 각다분했던 삶 자락을 들춰보는 어머니의 환한 웃음 같다.

 

멀구슬나무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왕벚나무에 자리를 내 주느라 등을 구부린 것인가 보다세상에 그냥 태어나는 것은 없다씨앗이 움을 트고 뿌리를 내리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또 연약한 움을 안아 제 몸을 열어주는 관계는 귀하다서로 다른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멀구슬나무와 왕벚나무도 태생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멀구슬나무가 싱그럽다아름드리는 아니나 잎이 떨어진 늦가을 나무 사이에서 청정하다왕벚나무도 멀구슬나무의 등에서 꼿꼿하게 잘 자라 있다멀구슬나무에 화답하는지 왕벚나무의 붉은 잎이 여린 손짓을 한다비운 듯 꽉 찬 멀구슬나무의 편안함에 내 마음마저 환해진다멀구슬나무의 둥지에서 어머니의 아름드리 품이 보인다그 품으로 내가 고스란히 안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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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전북도민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간 맞추기 (최희명 작)

 


나긋나긋해진 노란 배추속이 음식이라기보다는 잘 찍은 사진이나 그림 같다. 붉은 양념으로 침범하기가 저어된다. 나이가 들수록 무엇이든 뻣뻣하게 구는 게 싫어져서 올해는 조금 오래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 얌전히 숨죽인 채 물기가 빠지고 있는 채반에서 여리고 노란 배추속잎 하나를 뜯어 양념과 함께 간을 본다. 나긋함 속에 고집을 드러낸 짠 맛이 혀를 제압한다. 나는 배추에 간을 맞췄는데 배추는 나긋한 몸으로 내 눈을 맞추었고 짠맛은 고스란히 내게로 돌아왔다. 충분히 조율하지 않고 강요하듯 맞춘 간은 그저 짜거나 싱거울 뿐 진정한 의미의 간은 아닌 모양이다.

누구나 첫걸음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첫 아이가 그렇다. 최선의 선택이라 우기며 강요하거나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에 개입한 부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래서 그런가. 천성이 그런가. 성장을 완료했건만 세상으로 나가려하지 않는다. 말도 없다. 두문불출하는 우리 집 맏이 때문에 가슴이 늘 묵지근하다. 어쩌다 말을 섞으면 옹골차게 뱉어내는 짜디짠 반응이 소태 같다. 행여 내가 주입한 염기일지도 몰라서 소스라친다. 지금 저렇게 숨죽이고 있는 자식의 가슴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알지 못해 서성거린다.

어떠한 각진 맛도 만들지 않고 그저 세상에 존재하는 간을 조금씩만 받아들인 물질이나 사람은 조금 싱겁다. 자연과 가장 가까운 원형질이다. 본래의 자존심을 간직한, 동치미 국물처럼 슴슴한 맛은 허허실실 할 일 다 하는 둘째 아들이다. 엄마의 매운 맛도 형의 짠 맛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존재는 우뚝하다. 나의 톡 쏘는 말을 싱거운 대답으로 흡수해 버리면 덩달아 싱거워지고 만다. 쫓기지 않고 세상과 어우러져 사는 여유가 느껴진다.

드센 염기를 견디며 시집살이처럼 눌러 지낸 인고의 맛을 짠지를 통해 본다. 그러기에 석삼년을 묵묵하게 견딘 며느리처럼 얼마나 진득한가. 그러나 짜다고 투덜거릴 수 없는 이유는 그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독을 타 듯 물속에 다량의 소금을 집어넣은 건 우리가 아닌가. 투사처럼 튀어 오르지 못하도록 압재의 돌덩이를 얹은 것도 우리들이다. 제가 가진 모난 성질을, 물기를 소금물 속에서 완전히 탕진한 다음에야 비로소 해방된다. 그러나 빛을 보았다 하여 바로 세상과 만나지는 못한다. 어둠의 그림자를 희석시키는 과정이 남아 있다. 짠지는 시간이 만들어 낸 맛이다. 어머니의 손맛처럼 깊다. 그 인내의 향기로 언제 어디서나 수수한 중독성을 갖는다.

사랑, 일견 단맛 같지만 그것은 아마도 신맛일 듯하다. 처음에, 그리고 아주 가끔 벌꿀처럼 달콤하지만 뒤끝은 쓰기도 하고 떫기도 하다. 때론 예방주사처럼 따끔하게 매운 맛도 가르쳐준다. 그러나 늘 가슴 속에 침이 고이는, 그래서 사랑은 신맛이다. 삶에 있어 그만큼 당기는 유혹이 또 있을까. 유혹을 받아 들여 관계를 만들고 관계의 지속으로 열매를 만드는 과정이 얼마나 새큼한가. 기쁨과 아픔과 슬픔이 시간과 함께 간을 맞춰 버무려지면 드디어 숙성된 과일 효소처럼 깊어질 것이다.

요사이는 약방의 감초처럼 단맛이 모든 간을 맞추는데 끼어든다. 이제 사람들은 약간의 단맛과 친절과 칭찬은 예의라고 생각한다. 때로 단맛은 지나친 소금과 결탁해 미각을 호도하기도 하고 장부상으로는 절대 적법한 이윤을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달콤함은 쓴 맛을 수반할 때 그 느낌이 상승한다. 참고 또 참은 시간 뒤에 있거나 돌이킬 수 없는 낭떠러지의 앞에 있다. 그래서 단 맛은 두 얼굴이다.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살면서 얼마나 수도 없이 매운 맛을 보았는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다가 얼마나 눈물이 쏙 빠지게 혼쭐이 났던가. 시간은 가고 기억도 흘러 상황이 재현되면 본능처럼 욕심 하나로 기어이 매운 맛을 다시 보고야 만다. 그래서 삶은 영원히 미완성이다. 알고 싶지 않은 자신의 한계를 어쩔 수 없이 알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꼬리를 감추는 톡톡한 맛이다. 어찌어찌 정신 차려 살다가도 는적거리는 현실에 비위 상할 때가 있다. 약이 바짝 오른 청양고추 몇 개 된장 듬뿍 찍어 먹고 나면 속이 개운해지는, 삶이란 그런 것인가. 늘 일깨워 가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 각지고 헛도는 톱니바퀴처럼 각각인 성질을 도와 한 곳으로 모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조미의 힘이다. 예인이다. 자신의 존재가치가 미미하다고 생각될 때, 떨어진 갓끈이 못내 아쉬울 때,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주변이 너무 멀 때, 받은 것 없이 얼마나 관대한가. 준 것 없이 얼마나 고마운가. 인연을 존중하지 않거나 존중하는 방법을 모르는 관계를 얼버무려 돕는다.

바람이 되어 사라져 버린 옆지기는 사는 일에 늘 시들거렸다. 새파랗거나 샛노랗지 못하고 시무룩하게 빛이 바래 있었다. 간도 되지 않고 양념도 먹히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건 같이 사는 사람에게도 그 상태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매일 다른 래시피로 그에게 맛을 내 보려 했다. 그러나 ‘네 맛도 내 맛도’ 모르는 듯 그는 시종일관 간이 드는 걸 거부했다. 하나의 요리로 가시버시 섞이는 방법을 몰랐다. 그는 바람으로 떠돌고 나는 무말랭이처럼 비틀리고 메말라갔다. 시간에 의해 얼마쯤 생각이 숙성된 지금에 와서야 나의 양념이 너무 강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진다. 간이 되지 않으면 한번쯤 익혀볼 수도 있었겠다. 기다림으로 맛을 내는 짠지에게처럼 보채지 않는 진득함도 필요했겠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지만 적용할 대상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기로 한다.

간은 시간이고 관계이며 관심이다. 어떤 요리가 완성 되었다 해도 보편성 원리의 으뜸은 간이 맞아야 한다. 소금이 빛과 비견되는 이유다. 상대를 너무 지치게 해도 내가 너무 지쳐도 사람 사이 간은 맞지 않을 것이다. 착한 인사만 주고받는 사이는 설탕으로만 간을 맞춘 호박죽 같다. 아픔도 나누고 미움도 삭힐 수 있는 사이는 소금으로 완성된 단맛 같은 것 아닐는지. 조금 짜게 간이 된 김치 사이에 박아 두는 넓죽한 무처럼 서로를 알맞게 이어주는 존재이기를 소망해본다.

 

 

<수필> 최희명 당선소감-빈 가슴 글로 채워

 

살면서 늘 허기가 졌습니다. 밥으로도 재물로도 채워지지 않는 허공이 가슴에 있었습니다, 마음의 양식이라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도 하얀 허공으로 비어 있던 가슴이, 글을 쓰면서 차츰 그득해 졌습니다. 살면서 넘어온 험산준령 가시밭길이 그대로 글이 되었습니다. 지나온 과거는 그렇다 쳐도,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아야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선비의 문학이라 일컫는 수필은 시의 상상력이나 소설의 리얼리티보다는 사실적 삶에 토대를 두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 고생스러워도 바른 길을 걸으려 노력했습니다.

수필을 쓰면서 참 많은 응원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도반들이며 그들의 짝꿍들까지 지지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응원으로 ‘달동네 귀족’이 되었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마음이 부자인 상태를 말하는 ‘달동네 귀족’은 스스로 만든 단어입니다. 이제 이렇게 전북도민일보에서 저의 수필을 높이 올려 주시니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듯 더 높은 영광이 없겠습니다. 글을 써온 대여섯 해 동안 매년 1월 1일마다 신문에 실린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으면서 부러움과 존경을 바쳐 왔는데 그 반열에 오른다 하니 헛소문을 들은 것처럼 걸려온 전화번호를 자꾸 확인하게 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더 공부하고 더 성찰하여 높이 올려 주신 이름을 이어 가겠습니다. 끝없이 글을 쓰고 책을 만들어 사람들이 읽어주는 수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귀감이 되는 삶을 살아서 꿈꾸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그렇게 지지와 응원의 릴레이가 이어지도록 돕겠습니다. 뽑아 주신 마음에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드립니다.

 

 

<수필>심사평-­황토빛처럼 따뜻한 삶의 이야기

수필을 통해 세상은 새로 태어나고 채색되어진다. 전국 각지에서 신춘문예에 응모한 수필은 155명의 작품으로 총 208편이었다. 올해는 특히 일상에서 자주 쓰이던 물건들을 반추하고 그들의 의미를 일깨우는 작품들이 눈에 뜨였다. 지인의 죽음을 통해 삶을 의미를 성찰하고 자연스럽게 내면화한 작품들도 많았다. 작품을 통해 나타난 삶의 진솔함이 황토 빛처럼 따뜻했다. 신춘문예를 위한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몇 편의 작품들은 감성적인 언어로 아름다운 수필이 되기에 충분했지만 글쓰기 공부가 부족하여 산만해져 버린 것이 아쉬었다. 작품을 보내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박수를 보낸다.

당선작으로 최희명의 ‘간 맞추기’를 뽑았다. 배추에 소금 간을 하면서 간이 배는 모습을 통해 두 아들의 성향을 찾고 절제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삶을 투영하고 있다. 짠맛, 단맛, 신맛, 매운맛들을 생활 속으로 가져와 한계와 깨달음과 존재의 가치를 되새기고 있다. 관념적인 사고를 오랜 삶의 경험을 통해 흩트리지 않고 한 편의 수필로 완성하였다. 다소 무리한 비유 등이 마음에 걸렸으나 글에서 묻어나온 모습이 절여진 노란 배추속잎 같아서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당선을 축하하며 더 좋은 글로써 세상과 간 맞추기 바란다.

아깝게 탈락했지만 박헌규의 ‘메주각시’도 우수한 작품이었다. 메주와 메주각시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다시 찾고자 하는 점이 돋보였다. 관계에 대한 보다 깊은 성찰로 다른 상황들과 연계했더라면 더 좋은 글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박일천의 ‘인두’ 채정순의 ‘호미’ 김정수의 ‘두루마기’ 박시윤의 ‘온기’ 박금선의 ‘숫자 속에서 마음을 읽다’ 등 여러 작품들이 탄탄한 구성과 문장력이 돋보인 글이었다. 낙선한 분들에게 격려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013 영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이상렬

 

이명耳鳴

 [2013 영주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이상렬

 

남겨진 풍경마다 어둠이 내렸다. 또 밤이다. 부산하게 오가던 골목에 인기척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흐릿한 형체로 남겨질 무렵에서야 서재로 돌아왔다. 나의 지문을 화석처럼 안고 있는 빼곡한 책장의 책들, 수많은 생각과 번뇌를 기억의 저편으로 잠재우게 했던 책상, 가장 가까이에서 체온을 나누며 몸을 의지한 의자, 모든 풍경이 오랫동안 묵혀 두어 익숙함에도 오늘따라 낯설어 보인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책상 위에 모은다.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오늘과 내일이 교차된다. 생각의 덩어리가 커지고 한없이 깊어지는 시간이다. 때론 마음의 향방이 거미줄처럼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혼돈스러워질 때면 조용히 눈을 감는다.


현실과 멀어져 가는 이상들은 꿈결인지 생각인지도 모를 무아無我의 세상으로 나를 몰고 간다. 빛과 파장, 소리와 형태, 느낌과 흐름이 함께 공존하는 곳.


윙-, 윙-, 윙-, 삐---, 한 줄 소리가 바늘처럼 뇌리를 뚫고 지나간다. 누군가가 라디오 주파수를 돌려대며 이 밤을 지새울 작정인가 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소리를 피해 더 깊은 곳으로 몸을 옮긴다.


숲이다. 생명이 움트기 위해 잠시 웅크리고 있는 시간은 사방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둡다. 고요하다.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는 숲의 적막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길 위로 천천히 발을 옮겨 놓는다. 풀들이 몸에 부딪힌다. 조용하면 더 뚜렷해지는 것이 소리일까. 스윽-, 신경을 곤두세운 소리들이 나를 올려다본다. 지금 나는 불청객처럼 흘러들어 숲의 고요를 깨뜨리고 있다. 찌르르-, 찌르레기가 울고, 매앰 맴-, 끼르끼르-, 매미, 귀뚜라미가 사방에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둘러보아도 그들의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땅이 울렁이고 사방이 흔들린다. 온 숲을 밀어붙이는 굴착기 소리, 찌익찌익- 쇠를 갈아내는 잔인한 소리들이 나를 공격한다.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아도 소용이 없다. 그들은 나를 용서하질 않는다. 모두가 나를 향해 원망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을 따라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 걸까. 숨통을 죄어오던 숲이 멀리 있음을 직감으로 알았다. 여전히 사방은 실루엣으로만 형체를 내보이고 있다. 어디선가 비릿한 바다 냄새가 난다. 뻗으면 손에 닿을 것 같은 거리에 물결이 서 있는 듯하다. 차르르-, 수면은 잔잔했다. 바다의 놀음에 심취되어 몇 발자국 옮겨 놓는다. 차르르르-, 자갈을 밟는 발자국 소리에 파도가 나의 침입을 눈치 챈 듯했다. 쏴아-, 나를 집어삼킬 듯 고개를 쳐들고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높이 일어선 파도는 위협이라도 하듯 달려와 바위에 장쾌히 부서지며 제 형체를 드러낸다.


자리에 누웠지만 소리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루 중 마지막 고비다. 깊은 밤이면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지쳐 몸은 바닥으로 스르르 녹아든다. 소리의 무릎을 베고 잠이 든다.


첫 소리의 여행이 시작된 것은 스무 해 전이었다. 어느 날 귓가에 생면부지의 수상한 객이 찾아왔다. 처음엔 그저 조금 거슬릴 뿐 고통은 아니었다. 시간이 가면 잠잠해지리라 믿었지만 서서히 마수를 뻗어 온갖 소리로 제 본색을 드러냈다. 잠시 잠잠하다 싶다가도 몸뚱이가 지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정신을 교란시킨다. 그럴 때마다 현기증이 일어 바닥에 주저앉곤 했다. 불면의 날이 지속되면 될수록 내 영혼은 소리로부터 유린당하고 있었다.


얼마를 더 견디면 오늘이 지난단 말인가. 오늘만 참으면 내일이 올까. 동 트기가 얼마나 힘에 겨운가를 이명을 지독하게 앓아본 사람은 알리라. 새벽을 깨우며 일어날 때, 이제 제발 멈추길 바라는 그 희미한 기대가 깨어지는 순간, 오죽했으면 연명延命의 꿈마저 풀어버리고 싶은 생각도 해보았으랴.


세상의 소리들은 물속에서 들려오는 바깥의 소리처럼 웅웅 거렸다. 바닥까지 가라앉은 마음은 혼탁해져서 표정마저 일그러뜨렸다. 진저리를 치며 돌아서도 메아리치는 건 매한가지였다.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소리들은 삶의 흐름을 건드리며 나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세상의 소리가 자유자재로 나부대는 낮에는 그나마 잊을 수 있다지만, 밤은 쇠사슬에 묶인 듯 고통의 세계로 끌려가고 있었다. 칭칭 감고 있는 지긋지긋한 소리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산 능선 위에 낮달이 희멀겋게 걸려 있던 어느 가을, 밤새 소리에 난타 당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초점 없는 눈, 맛을 잃은 입, 세상 어디에서도 대접 받지 못할 야윈 몸으로 버스에 올랐다.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아양교의 물결은 단정했다. 잠시 고요에 빠져있을 때 다시금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듯 요란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목으로 넘어가는 뜨거운 눈물을 머금고 힘없이 무너지는 한 남자가 차창 속에 있었다. 결핵을 앓아 핏기 없고, 퀭한 두 눈과 광대뼈만이 덩그러니 자리 잡아 얼굴임을 말해주던 남자, 깡마른 체구에 폐 구석구석까지 균들에게 내어준 그 남자는 어쩌면 물결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고 싶었을는지도 모른다.


시간은 고통도 잠재우는 묘약이었을까. 소리와 동거하는 스무 해 동안 고목이 되어가고 있는 듯했다. 나는 아직도 건재하다. 그러고 보니 군데군데 옹이 여럿 품고서 중년의 고개를 넘어가고 있음이 참 다행스럽다.


소리는 단지 소리일 뿐이다. 마치 실체 없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것, 그것은 허상이었다. 지난 세월 동안 숱하게 나를 위협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나를 문밖으로 내몰지 못했다. 내 안에서 만든 소리는 그럴 힘이 없다. 안에서는 소리의 폭군이라지만 바깥에서는 맥을 못 춘다. 그래서 소리는 무형의 포효다. 나를 찢고 파괴할 발톱도 가지지 않았었다. 어쩌면 그간 내 스스로 자신을 얽어매며, 가두며 더 크게 고통의 소굴로 내몬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도 오랜 세월 같이 살다 보면 벗이 되는 것인가. 이제 나는 이명에 대한 익숙하고도, 자연스러운 생존법을 터득했다. 처음엔 금은방의 저울처럼 미세한 소리의 무게에도 휘청거렸으나, 이제는 넉살좋고 인심 후덕한 재래시장의 방앗간 저울처럼 큰 보릿자루 서너 개쯤 올려놓아도 거뜬히 소화해내는 여유가 생겼다. 이명은 나를 산 채로 굴복시키기 위한 덫이 아니라, 어쩌면 긴 생의 여정을 함께 걸으며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 동반자였는지도 모른다.


요즘 이명을 대하는 내 뱃심이 제법 두둑해졌다. 소리를 삼 시 세 끼로 먹고, 내 걸음의 디딤돌로 여기며 인생의 강물을 저벅저벅 걸어 여기까지 살아서 다다랐다. 우리네 삶이 언제 고통이 없었던 적이 있었던가. 노력하여 바꾸지 못한다면 받아들이는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옳으리라. 뼈에 사무치는 아픔보다 더 위대한 것은 그것에 대한 건강한 해석이 아닐까.


그랬다. 이명은 세상과 나를 단절시키는 장벽이 아니었다. 이명耳鳴은 이명異鳴을 듣게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내 귀의 소음이 커질수록 상대의 세밀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리라. 온갖 고민을 끌어안고 사는 사람들의 소리가 이윽고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얼마나 아픔이 서려있는지, 무거운 인생의 짐이 얹혀 욱신거리는지 이명耳鳴을 앓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르륵 사륵, 소리가 먼저 일어나 여명을 밝힌다. 오늘도 긴 소리의 여행길에 오른다. 이젠 제법 여행을 즐길 배낭 하나쯤 거뜬히 꾸려 나선다. 숲을 걸으며 만나게 될 바람, 물, 새, 매미, 귀뚜라미들,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의 속삭임,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귀 기울이고 들어볼 참이다. 때로는 나의 이야기도 그들에게 들려 줘 볼까 한다. 모든 것이 허상이어도 좋다. 남들과 공유할 수 없는 소리들이 내 안에 기거하는 동안 나는 더 넓어지고, 더 여물어지는 여행을 떠날 것이다. 아프지만 깊은, 쓸쓸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여행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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