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와 뱃살 -- 임현택
청바지를 입었다 벗어다를 반복한다. 아랫배에 힘을 주기도 하고 숨을 멈춰보기도 하지만 탄력 없는 청바지는 내 허리를 거부하고 있다. 작년에 입었던 바지가 뱃살을 이기지 못하고 입을 떡 벌리고 만다. 아무리 구겨 넣어도 도로 튕겨 나오는 뱃살, 늘어진 고무줄처럼 처진 뱃살을 보정속옷 속으로 꼭꼭 숨겨 놓았는데도 지퍼가 올라가질 않으니 애꿎은 청바지만 원망스럽게 노려봤다.
팔, 다리는 가늘어지고 허리둘레는 굵어 다이아몬드 형으로 변형되어가는 것을 두고 거미 형 인간이라 한다. 나이테가 늘어나는 나무는 밑 둥이 굵어 안전감이 생긴다지만, 난 점점 거미 형이 되어가나 보다. 애석하게도 그 모습을 점점 닮아가고 있으니 애가 탄다. 조금이라도 줄여 볼 요량으로 헬스는 물론 산행을 강행했다. 한 달, 두 달 시간의 두께가 더해가면서 줄어들어야 할 허리둘레는 제자리걸음인 것이 신통치가 않다.
효과가 탁월하다는 살 빼는 약은 물론 식이요법, 다이어트 사이트를 밤마다 뒤지곤 하였다. 그러면서 조바심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체중계는 몸살을 앓는다.
사춘기중학교 시절, 딸이 넷이나 되는데 어머니는 우리의 마음을 그림을 보듯 훤히 꿰차고 계셨다. 당시 70년대 중학교시절 두레 품앗이 등 협동방식의 새마을운동이 전국적으로 시행되면서 “잘살아보세”로 근대화를 이끌던 시기, 농촌엔 당연 주 수입원은 농사였다. 가계비는 농산물을 팔아 마련했고 농산물은 풍족하질 않았다. 어머니는 쌀 한 말 값보다 도 비싼 보정속옷(거들. 니퍼)을 딸들에게 입혔고, 넓은 허리벨트를 구입해 늘 차고 다니게 해 가녀린 허리를 만들었다.
요즘날씨보다 훨씬 춥고, 또 더웠던 그 시대 선풍기도 흔하지 않았던 그때, 언니와 난 일 년 내내 열심히도 입었다. 겨울엔 꽉 조여 주는 속옷이 추위를 덜 타게 만들었지만 여름날엔 땀띠가 나 가렵기도 했으나 가는허리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고통은 참아 내야만 했다. 때문에 결혼을 하고 마흔을 넘어서도 잘록 들어간 허리를 유지 하지 않았나 싶고, 덕분에 티셔츠를 청바지 속으로 넣어 입고 다닐 수 있었다. 게으름이 부른 결과는 참으로 엄청났다. 나이테가 하나, 하나 그려질 때마다 귀찮다는 이유로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만들어 편하고 풍성한 옷을 선호하면서 늘어난 허리 살, 실로 비극이다.
외출을 하려고 꺼낸 옷가지가 침대위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것이 스트레스로 다가와 혈압까지 오르락내리락 한다. 좀처럼 맞지 않는 바지들, 신경질적으로 옷장에 구겨 넣고 도로 헐렁한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했다. 진종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심난스럽고 우울한 살과의 전쟁, 끝내 불만만 가중 시킨 마음은 어두운 동굴 속으로 빠져 들어간듯 어지럽다. 꽉 낀 청바지가 어울렸던 멈춰진 시간 속을 헤매면서 말이다. 늘어난 허리 살 만큼 덩치 값 좀 하면 좋으련만 점점 좁아지는 밴댕이 소갈머리는 변덕이 심해져 짜증이 늘어만 간다.
누구나 지난 과거엔 잘나가고 화려한날이 있었다. 현실에 불만족은 과거에 집착을 한다고 한다. 과거에 집착하기보단 현실을 인정해야 하지만 이중 삼중 스트레스는 날 아프게 한다.
현대인들에게 스트레스로 인한 비만인구가 늘어간다고 하지만 게으름이 부른 모습 같아서 외출을 하려면 자꾸만 움츠러든다.
보정속옷처럼 타이트한 청바지를 한참을 만지작거리다 차곡차곡 접어 옷장에 도로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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