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목 -- 임현택
동짓달 앞에 세월이 멈춰 섰다. 한해를 훑고 온 바람. 세월의 끝자락에서 이별의 아쉬움인양 폭설과 한파가 연일 이어진다. 한 해 동안 장롱 속 깊숙이 잠들었던 내복을 꺼내 입는다.
쉰을 문턱에 둔 사람들의 연말은 남다르다. 그것은 마치 젊음을 영원히 잃어버린다는 강박관념 같은 것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여성들의 아홉이란 숫자는 더욱 그러 하다. 그 나이에 든 언니들이 있다. 사십에서 쉰을 넘어서는 언니들은 마지막 며칠 남지 않은 사십대를 아쉬워하며 여행을 제안했다. 그렇게라도 하여 아쉬움을 달래려는 심산인 모양이다.
몇 일간의 여행은 큰마음을 먹어야 했다. 가사를 책임지고 있는 부녀자들이 집을 비운다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족의 굴레를 벗어나 어둠이 깔려있는 새벽열차에 몸을 실었다. 허공 속에 떠 있는 고삐 풀린 마음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부모는 항상 자녀들 때문에 노심초사 애를 태운다. 팔십 먹은 부모가 육십 먹은 아들을 걱정하고 회초리를 든다 하지 않던가! 여행길에서도 자식, 남편걱정에 조바심을 놓지 못하고 연신 휴대폰에 손이 가는 모습에 씁쓸하다. 사십구와 오십은 숫자 일 차이, 한해달력은 열두 장이지만 마흔 아홉 살과 쉰 살은 일 년 차이로 365일이란 엄청난 차이의 숫자다. 당연 쉰을 문턱에 둔 선배들은 마흔과 쉰은 상상을 초월한 숫자라며 마흔이란 숫자에 집착을 보이는 것이다.
어둠이 벗겨지면서 창에 낀 성에는 햇살에 더 반짝인다. 잠시 정차한 간이역 희미한 플랫폼은 하루를 열고 경적소리를 내며 평행선위를 달린다. 하얀 눈을 입은 잔가지, 논바닥 군데군데 묶어둔 볏짚들 사이에 살짝 내민 벼 밑동도 한파로 인해 온통 하얗게 덧칠돼 있다. 주름을 감추려 점점 짙어지는 화장처럼.
빈가지에 쌓인 잔설이 포근하게 다가오는 주왕산, 풍광에 시린 눈을 감고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인적이 드문 산사 추녀 끝 풍경만이 제 몸을 쳐 삶의 여유를 담아 정적이 쌓여 있다.
기암절벽과 바위가 아름다운 주왕산의 꽁꽁 얼어붙은 계곡은 폭포마저 삼켜버려 겨울산행의 진미를 더했다. 비록 폭포와 소가 얼어 물이라곤 찾아 볼 수는 없었지만 얼음 속에 물 흐르는 소리가 청아하다.
양지에 흘러내린 눈이 추위에 견디질 못해 얼어 암벽을 이룬 산. 고드름도 따 먹고 엉금엉금 얼음 위를 기어 올라가며 동심으로 풍덩 빠졌다.
산행을 마치고 짠 내가 나고 천막을 뒤집어 쓴 재래시장엘 갔다. 예전 같으면 사람들로 북적였을 터인데 요즘은 대형매장에 밀려 다소 쓸쓸한 풍경이다. 허름한 가게 앞 자판 위 대바구니에 맛보기 건어물이 눈길을 잡는다. 남편 술안주용 포,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징어를 비닐봉지에 가득 채워 넣었다. 건어물상회에서 잔득 사들고 나온 시장보따리들 여자라기보다는 엄마였다. 나를 찾으려 내 이름을 찾기 위한 미명하에 일상을 일탈했지만 그것은 허울뿐 우린 역시 주부였고 어머니였다. 여자는 입출금이 자유로운 자유통장이며 엄마는 한번 입금 하면 좀처럼 헐기 어려운 적금통장 같은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뭉클해 지나보다.
백세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 하지 않던가. 오십이면 가히 적은나이는 아니었다. 공자는 나이 마흔을 미혹되지 않는 불혹이라 했고 오십을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라 했다. 육십은 귀가 열리는 이순 칠십은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며 ‘종심소욕 불 유구(從心所欲不踰矩)’라 했다.
우리는 여행에서 종점이 아닌 출발선에 서 있음을 확인했다. 완경에 접어든 나이라지만 숨이 차서 멈추고 지쳐 스러지는 계주의 마지막주자가 아니라 출발선에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존재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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