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여유 그리고 기다림-- 임현택

 

 

비워지는 연말이다. 초록 수채화를 그려내던 들녘 가득했던 들꽃들도 사라지고 간간히 휘청거리는 잡초만 빈들을 지킨다. 모두가 비워내고 덜어낸다. 그중 채워진 게 있다면 언니 집에 분양받은 토종닭과의 만남이다.

 

도심의 주택에서 닭을 기른다는 게 여간 만만치가 않다. 절기 중 가장 춥다는 소한(小寒)에 토종 어미닭은 자꾸만 지푸라기를 끌어 모아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 행위는 멈추질 않아 결국 대설(大雪) 쯤에 알을 아홉 개나 낳아 품기 시작했다.

어미닭은 가슴 털을 뽑는다. 그 털로 알을 감싸 직접 체온을 알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서다. 모성이 강한 토종닭은 알을 품기 시작하면 거의 먹지 않고, 어쩌다 물 한 모금과 약간의 먹이만 먹고 온전히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알을 품는 동안 주위를 경계하고 가까이 다가서는 게 있으면 소리 지르며 부리로 쪼아대며 알을 지킨다. 원초적 본능은 매운바람보다 더 살을 에 인다.

 

긴 시간을 그리 보낸 어미닭. 가슴은 맨살이 그대로 벌겋게 드러나 있었고, 아홉 개의 알 중 두 개가 부화에 성공했다. 부화된 병아리는 어미 품을 파고드는데 어미닭은 시가가 지난 무정란을 여전히 품고 있었다. 사람보다 더 진한 모성에 울컥했다.

이처럼 생명의 탄생은 신비롭다. 결혼을 하면 자연스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다 당연한 줄 여기고 또 그랬다. 그렇지만 이런 자연스런 단계를 벗어난 이들도 있다. 아니 고통 속에 사는 이가 있었다.

 

불임, 마치 사전 속에 나오는 단어쯤으로 이들도 생각했고,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들 이야기로만 치부를 하며 살았다.

그러나 결혼 9년차. 임신이 되지 않아 전국 유명하다는 산부인과를 내 집 드나들듯 하는 게 일상생활이었다. 기다림에 지쳐 목이 말라 때론 술에 기대어 보고, 절에 가기도 하고, 교회를 찾아 금식기도도 해 보며 방황케 했던 시간들. 더욱 힘들 게 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조바심을 부추기고, 날카로워진 신경은 이성을 잃기도 해 부부싸움이 잦았다. 결국 강산이 바뀔 쯤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다지곤 부부는 병원 방문을 중단했다.

 

모든 일에 변수가 생기게 마련. 이듬해 뜻하지 않은 행운이 찾아왔다. 임신이었다. 그것도 쌍둥이를 비우면 채워진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마치 기다림의 여유같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본 햇살처럼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또 하나의 만남은 많은 변화를 주었다. 자식에 대한 집착은 관심으로 넘치고 탐내고 호사를 누리던 마음에 여유를 찾았다. 기다림으로 가득한 고통의 그릇을 여유로 비우고 나니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이 있었다고 한다.

 

가장 숭고한 사랑인 모성. 제 살을 새끼에게 다 내주고 죽는 우렁이나 자신의 털을 뽑아 체온을 유지하며 알을 품는 닭. 한낮 미물일지언정 모성만을 똑 같았다.

가축들은 젖을 먹이고, 조류들은 잘게 쪼아 먹이를 새끼에게 나눠주며 돌본다. 유일하게 닭만은 새끼 주위를 맴돌며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병아리들을 주위 천적으로부터 보호를 한다. 어미닭은 울안에서 동거하며 무탈하게 자랄 수 있도록 기다림의 여유를 갖고 있는 거다. 우리 어머니들처럼.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하듯이 내 자식이 최고이기를 바랬고 항상 선두에 서 달리길 원했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려 욕심으로 채워진 초췌한 내 모습을 걷어 올렸다.

사계절의 끝자락 겨울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만남, 여유 그리고 기다림.

모든 게 비워지는 이 계절 덫에 걸린 애증을 비워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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