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끌고 가는 할머니 -- 임현택
가을을 삼킨 서릿바람이 내려앉는다.
아직도 훤한 초저녁인데 서쪽하늘에 개밥바라기가 반짝거리며 해를 밀어낸다. 허리구부정한 할머니는 파지가 듬뿍 담긴 작은 손수레를 끌고 우둔한 황소걸음으로 골목길을 누빈다. 모퉁이마다 설치된 정보지를 노인은 노련한 손놀림으로 모조리 손수레에 싣는다. 주민들을 위한 정보지가 노인에겐 파지조각일 뿐 그다지 중요한 것이 없는 듯 열심이다.
어느 날 친구들과 서울 행사 참석차 가는 길에 잔뜩 흥분된 기분으로 무궁화호열차에 몸을 실었다.
길게 늘어선 기찻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연을 먹고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있었다. 홍탁 같이 톡 쏘는 맛은 없어도 그저 지나간 시간 속에 우리네 입맛에 딱 맞는 묵은지 같은 깊은 맛 나는 사연을 안고서 말이다.
검은머리에 하얀 박꽃을 피우는 나이임에도 가는 길 내내 고교시절 완행열차 추억을 꺼내들었다.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퍼 올릴수록 신선한 기역은 가슴을 뛰게 만든다. 바닥에 신문 깔고 여행 가던 추억을 그리며 오징어에 캔 맥주를 마시며 우린 하나같이 그 시절로 젖어들었다. 그땐 왜 그리 교복이 싫던지 교문만 나서면 사복으로 갈아입느라 늘 구석을 찾곤 했다.
열차 칸과 칸 사이는 학생들의 아지트였다. 신문지 깔고 앉아 노래 부르고 시도 외우며 청춘을 꽃피우고, 입 안 가득 매운 연기를 담고 눈물을 질금 흘리며 어른 흉내를 내기도 했었던 추억도 그렸다. 평행선을 달리는 무궁화호는 한 팔만 벌려도 단박에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청춘을 곁에 두고 서울에 우리 일행을 내려놓는다.
행사 전, 여유시간이 남아 아직도 가을이 뒹구는 공원길을 거닐었다. 오색 빛으로 떨어진 낙엽 진 공원은 어설픈 우리에게 낙엽향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울타리 밑에 아슴아슴 허니 잔득 움츠려 꿈틀거리는 것을 눈에 담고 도심가운데 시골향기를 맡으며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지푸라기를 뒤집어 쓴 듯한 머리, 공원 담벼락처럼 거친 손, 마치 시골 부엌 부지깽이같이 바싹 마른 노숙자들이 여기 저기 파지위에 움츠리고 있는 게 아닌가! 어떤 이는 신문을 이불삼아 덮고 그것이 재산인양 품에 켜 안고 자는 이도 있었다.
방송매체에서 보고 듣던 노숙자들, 한 발 사이에 그들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불구도 아니요 머리허연 노인도 아닌 불혹을 넘긴 자 들이 태반 이였다. 여자도 무리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방송에 본 광경이 눈앞에 드라마처럼 펼쳐지니 어리벙벙하다. 동화 속처럼 시골 쥐가 어찌 서울 쥐를 이해 할 수 있을까만! 진정 저들의 구겨진 삶을 펼 방법이 없는 것인지? 삶을 구걸하는 저들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잘 것 없는 그 한 장, 도심에 버려진 신문이 노숙자들에게는 소중한 재산인거다. 노숙자의 마침표는 언제 일 런지. 스스로 늪 속으로 빠져 들어 가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인력난에 농사를 접거나 건설현장의 노무자 구직난은 여전히 빈자리인데 말이다.
어두워지는 서울, 어둠에 떨고 있을 노숙자의 아픈 서울이 멀어지고 있었다.
서울의 하늘은 화려함 뒤에 아픈 어둠이 있어 시골에서 올라온 우리들을 아프게 했다. 그 옛날 선망하던 무궁화호가 이제는 완행열차란다. 우린 고교생의 꿈을 실었던 하행선 완행열차에 지친 몸을 묻었다.
신문 쪼가리를 모아 생계를 유지하는 시골할머니, 공원 바닥에 낙엽처럼 누워있는 노숙자들의 모습들 답답함에 무거운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할머니는 비오는 날이면 헐렁한 우의를 걸치고 당신보다 파지가 젖을까 비닐로 꼭꼭 쌓아 손수레를 끌고 가신다. 온갖 구진일로 손가락은 펴지지 않아 반쯤 구부러진 손, 늘 색이 다른 구멍 난 장갑을 끼고도 구김 없이 사시는 할머니가 있어 동리가 아름다운 것임을 안다.
그림자가 길게 그려진 오후, 삶을 끌고 가는 노인의 수레가 골목을 서성인다.
신문뭉치를 아무렇지 않게 던져 놓고는 옷에 먼지라도 묻을까 부산떨던 모습이 부끄러워 후끈 달아오른 얼굴을 얼른 숨겼다. 그 흔한 신문 쪼가리가 노인의 생계수단이지만 서울 노숙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란 말인가! 하여 전보다 더 쓰레기를 분리수거해 정리를 하는 습관이 생겨 분리함을 정리한다.
■ 음원(무한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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