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가 흐르는 화양구곡** (괴산군 화양동)
화양동 탐방지원센터에서 ~~ 우암송시열유적지까지
화양구곡이란 :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곶
위 구곡을 일커는 곳입니다.
* 화양동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입니다.
** 화양 제2곡 운영담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합니다.
** 화양서원 **
초기 서원은 배향된 인물을 숭앙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기능을 수행했으나 점차 지역 사림들의 구심점이 되었으며, 향촌 사회의 여러 문제를 의논하는 운영 기구의 기능을 갖기도 했다. 후기에는 붕당 정치의 영향으로 서원 설립이 남발되면서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도 전국에 44개에 이르게 되었다. 화양서원은 노론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서원 가운데 명성이 높고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서원의 권세가 강해지면서, 제수에 쓴다는 명목으로 각 지역에 화양묵패를 보내어 강제로 돈을 걷는 등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화양서원뿐 아니라 각 지역의 서원에서 두루 이런 폐단이 발생하자, 1858년(철종 9년)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의 주청으로 복주촌을 없애고, 재화 징수도 금지시켰다. 이어 1870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건물도 모두 헐리게 되었다.
광복 후에 화양서원 터에서 서원의 건립 취지와 배향한 인물에 대한 기록을 담은 묘정비가 발견되었는데, 이 비는 1716년(숙종 42)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윤봉구(尹鳳九)가 지었다. 묘정비는 서원 건물이 헐릴 때 매몰되었던 것으로, 후일 다시 만든 것을 포함하여 총 4개가 수습되었다. 화양서원 자리에는 현대에 들어 성공문, 외삼문, 숭삼문, 중반청, 존사청, 풍천재, 비각, 사당 등의 건물이 복원되었다. 1999년에 국가사적 제417호로 지정되었다.
** 화양 제2곡 운영담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습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합니다.
** 양추문 **
스승의 가르침은 가을의 태양과 같다고 합니다.
양추문 양쪽으로 나무계단이 있어 이곳을 지나면
허리를 굽혀 올라가야만 하는 성공문이 나옵니다.
** 만동묘로 향하는 길은 좁고 가파른 돌계단 **
돌계단은 중국 사대주의의 상징으로 누구나 머리를 숙이고 올라야 한다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를 수 있는 넓은 구조로 된 돌계단입니다.
동시에 누구나 고개를 숙여 한 발 한 발 띄게 되는 좁고 높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성공문을 들어가야 만동묘가 있습니다.
화양(華陽)은 중국의 햇빛이라는 뜻입니다.
송시열이 화양동을 사랑한 것은 그가 명나라를 떠받들었기 때문이며, 만동묘로 증명합니다.
송시열의 유언으로 지어진 이곳은 들어가는 계단 자체가 상당히 가파릅니다.
명나라 황제에게 예를 다하러 올라가는 길에 허리를 굽히고 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만동묘[ 萬東廟 ] **
요약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준 데 대한 보답으로 명나라 신종(神宗)을 제사지내기 위해,
1704년(숙종 30) 충북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동(華陽洞)에 지은 사당.
인조 때 청나라를 다녀온 민정중이 구해온 명나라 마지막 황제 의종(毅宗)의 친필인 ‘비례부동(非禮不動)’이라는
글씨 한 폭을 송시열(宋時烈)에게 전해주자 이글을 보고 의종이야 말로 예(禮)를 지켜낸 최고의 군주로 칭송하였다.
존명 사대주의 사상에 열렬했던 송시열은 이를 받고서 이 글을 화양동 석벽(石壁)에 새겨 놓고
석벽 위에 공부하는 사당을 지었는데, 송시열이 죽을 때 그의 제자 권상하(權尙夏)에게
이곳에 묘우(廟宇)를 지어 신종과 의종을 제사지내도록 하여 권상하가 유림을 동원하여 지은 것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 묘에 딸린 전토(田土)와 노비를 주었고,
영조 때에는 묘를 중수하였으며 면세전(免稅田) 20결(結)을 주었다.
[출처] 괴산 화양구곡
** 만동묘의 지붕 **
화양서원내 만동묘의 지붕기와를 보면 유일하게 암막새와, 수막새가 아귀토가 아닌
연꽃무늬 문양의 막새를 사용했습니다.
이 넓은 서원내의 막새는 아귀토를 사용 했습니다.
유일한 만동묘 지붕의 막새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 담장 기와 **
화양서원의 울타리인 담장을 보면 수키와와 암키와를 사용했는데
가만 보면 암키와 두장을 이용하여 이중으로 만들었고
수키와는 아귀토로 마감을 했습니다.
** 만동묘정비 **
숙종 42년(1716)에 세웠으며 비문은 윤봉구가 짓고,
전자는 옥편체에서 집자하고, 비문은 안진경체에서 집자한 것입니다.
서원이 헐리면서 땅속에 매몰되었다가 광복 후에 다시 세워놓았습니다.
화양서원 묘정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을 제향하는 화양서원에 세워진 비석입니다.
묘정비는 서원 앞에 세워 서원의 건립 취지와 서원에서 제향하는 인물, 서원의 주인에 대해 기록해 놓고
비는 높이 210cm, 폭 75cm, 두께 30cm로 넓이 150cm의
네모반듯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뒤 지붕돌을 올린 모습입니다.
녹음이 짙어지는 계절에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청산을 노래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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