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 임현택
패션과 미의 집합소인 백화점엔 하나같이 조각 같은 미인들로 보인다. 패션 잡지 쇼핑몰 화보에도 꽃미남이 인기절정을 치닫고 있으니 미를 추구하는 여자들 마음이 오죽 탈까. 자연스레 성형이 우리 일상 깊숙이 다가와 오히려 성형미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성형에는 눈, 코, 얼굴, 턱 선은 물론 치아 성형까지 다양하다.
사랑니 염증으로 치과엘 갔다. 여덟 살 정도의 아이가 입에 솜뭉치를 물고 있는 게 윗니를 뺀 모양이다. 마취를 하고 뺐으니 아프진 않았겠지만 찌그린 얼굴이 잔뜩 겁을 먹었던 모양이다. 엄마 옷자락에 매달려 훌쩍거리는 아이는 아픔보다는 자기의 이를 잃어다는 서러움이 더 컸을 것이다.
어릴 적 무명실로 고리를 만들어 양쪽 팔을 잡고 눈물, 콧물 흘리며 온갖 씨름 끝에 이를 빼는 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이가 흔들렸다. 난 두려움 때문에 윗니가 흔들리는 것을 숨겼었다. 식사 때나 양치할 때 좀 불편했지만 이를 빼는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급기야 잇몸에 까칠까칠 새 이가 나오면서 저절로 이가 빠졌다. 덧니였다. 이가 오복중의 하나라며 부모님은 난리 난리다.
민간오복은 치아, 자손 번창, 부부해로, 부, 명당에 묻히는 것이라 한다. 대를 이을 자식들과 풍요롭게 부부해로 하다 명당에 묻혀 후손에게 복을 준다면 그 보다 더 복이 어디 있을까마는, 치아가 없어 먹는 것이 부실하다면 먹는 기쁨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당연 치아가 오복중의 하나요, 으뜸이다. 못난 덧니가 난 후론 더 이상 꽤 부릴 수 없어 이를 빼면 노래를 불렀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큰소리로 부르며 지붕 위에다 던졌다. 윗니는 지붕에 던지고, 아랫니는 아궁이에 던져야 새 이가 잘난다고 믿어 덧니 날까 힘차게 던졌다. 겁이 많은 난 미처 이를 빼지 못해 덧니가 생겨났다. 입모양은 물론 엉성한 치아 때문에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웃을 때 덧니가 살짝 드러내는 귀여움도 있었다. 하지만 덧니가 콤플렉스로 자리 잡아 여럿 앞에서는 잘 웃지 못 할 때도 많았다. 치아 성형이 대중화 되면서 덧니를 교정하기로 마음을 다잡아먹고 치과를 찾았다. 덧니로 들쑥날쑥한 치아배열을 위해선 보철을 오랜 시간 끼고 있어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또한 오복만큼이나 비싼 교정비용도 만만치가 않았다.
아름다운 치아를 위해선 미관상은 물론 불편함을 감수하고 교정을 해야 하지만 자신이 없어 포기를 하고 말았다. 덕분에 양쪽 뾰족한 송곳니가 자리 잡으면서 치아가 돌출 돼 웃는 모양이 일그러진다.
그러고 보면 요즘은 덧니 나온 사람이 별반 없다. 희고 가지런한 치아는 미인의 상징처럼 여겨진 이 시대에 설령 덧니가 났다 한 들 치아 성형을 받고 나면 새 인물로 바뀐다. 예전에야 실로 묶어 이를 뽑았다는 걸 지금 아이들이 상상조차 했겠는가. 요즘엔 유치를 빼는 것도 치과에서 손쉽게 뽑아 버리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이 구전동요는 거의 사라졌다. 랩과 재즈, 팝송이 귀에 익고 부르기 쉬운 아이들은 구전동요엔 관심도 없다. 이젠 이를 빼는 웃지 못 할 추억도 가물가물 먼 기억 속에 희미하게 자리만 잡았을 뿐. 기성세대들도 자연스레 구전가요는 잊혀져 갔고 오히려 뜻있는 자들이 근원을 찾는다고 아우성이다. 칩 하나 버튼 하나로 세상을 열고 닫는 첨단시대, 이젠 까마득히 먼 이야기로 구전동요는 가슴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미에 대한 추구는 스스로의 만족감일 테지만 엄격히 남에게 예뻐 보이려는 궁극적 목적이며, 이를 위해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탓할 수는 없겠고 오히려 정성을 다해 몸 관리를 하고 치장하는 이들의 노력을 생각할 때 누가 뭐래도 그 과정은 가상할 뿐만 아니라 외려 아름다워 보이지 않겠는가?
사랑니 염증으로 미간을 찌푸리고 앉아 있는 내 모습, 그 옛날 이를 빼고 엄마 품에서 훌쩍거리던 그 모습이다. '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 어쩐지 오늘따라 추억의 노래를 다시금 불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