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빠진 개구리
강에 빠진 개구리 - 임현택
햇살보다 먼저 새벽을 여는 알람, 익숙한 그 소리에 길들여져 있다. 비몽사몽 귓전에 맴도는 알람에 하루를 연다.
꽃샘바람, 봄기운이 돌기는 하지만 아직 옷 속을 파고드는 바람은 여전히 차갑다. 산기슭 바위사이에 얼어붙었던 얼음이 녹아내리는 경칩, 개구리 입 떨어진다는 날이다. 겨울 내 움츠렸던 골짜기에 흘러내리는 물은 얼음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묵은 갈잎에 숨어있던 개구리, 그때부터 울기 시작한 녀석은 초가을까지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댈 것이다.
들녘에서도 개구리들의 합창이 시작된다. 한해 중 겨울 동안만 모든 것을 비우고 있던 무논이다. 개구리의 울음은 비운 것을 다시 채우라고 농부들을 불러내는 신호와도 같다. 한해의 시작은 온 가족이 한데모여 북적 대는 설날이고, 하루의 시작은 머리맡의 알람 소리이며 농사일의 시작은 개구리의 울음소리인 듯하다.
구애(求愛)의 합창 짝짓기를 위해 암놈 한 마리 놓고 수놈 여러 마리가 뒤엉켜 울어대는 소리, 그 소리는 마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리는 핸드폰같다. 그처럼 핸드폰은 개구리를 닮았다는 생각이다.
남편과 두 아들, 넷이 살고 있는 우리도 그렇다. 식구들 너나없이 소유한 핸드폰소리가 구석구석에서 울려 댈 때면 지금 한창 계곡에서 울어대는 개구리를 떠 올리곤 한다.
옛날에는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비가 올 징조라 했다. 물론 개구리가 우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피부호흡을 하는 개구리는 습한 날이나 비오는 날이면 더 울어댄다. 살갗을 통해 산소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비오는 여름날에 더 많이 울어대는 가 보다.
손끝에서 울어대는 휴대폰, 헤아릴 수 없이 완벽한 기능과 성능을 간직한 자그마한 기계도 알람소리로부터 하루를 연다. 잠자리에 조차 손아귀에 쥐고 자는 아이들, 손바닥만 한 그 기계는 그들의 이력을 전부 쏟아 담았으니 당연 소중한 분신 이다.
벨 소리, 혹은 통화하는 목소리가 공해로 전략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나 편하다는 이유로 배재할 수는 없는 작은 기계, 90년대 후반부터 대중화된 짧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지금에는 홍수처럼 밀어 닥쳐 오히려 없으면 이상하리만큼 필요악인 휴대폰이 되었다.
강의시간이나 회의시간에 잠시 꺼놓을 때도 옆 사람의 눈을 피해 수시로 전화기를 확인하곤 했다. 필요로 만들어 놓은 휴대폰이 어느 순간 우린 문명 속에 기계들에게 서서히 점령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얼마 전 물에 빠트려 휴대폰이 고장이 났다. 수리 센터에 맡기니 임시 휴대폰을 대여 해 준다고 하지만 거절 했다. 고장이란 핑계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루가 지나자 세상이 궁금하고 답답해져 왠지 모를 불안감에 초조하여 이틀도 지나지 않아 대리점에 신속하게 수리 해줄 것을 당부하고 말았다. 딱히 급하게 쓸 이유도 없는데 조급함이 앞선다.
몇 칠 이 지나자 그 동안 그 작은 기계에 이끌려 얼마나 구속받으며 지내왔는지 알게 되었다.
휴대폰이 없자 그것은 또 다른 내 안의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력이 강하다. 현대는 기계문명의 길들여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끈임 없이 발달하는 문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만, 기계문명에서 한 발짝 뒤로하고 자연과 더불어 가끔은 자연의 순리에 부응하면서 자연주의에 멈추고 싶었다. 작은 기계에서 벗어난 일상은 조금은 답답하지만 굴레에서 탈피해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추억을 찾게 된다.
핸드폰을 찾아왔다. 강에 빠진 개구리가 돌아온 것과 같은 날이다. 궁금증에 목말라 그간 메세지와 부재중전화를 확인하는 수선을 떠는 나를 본다. 원초적 본능일까. 아님 또다시 기계에게 길들어지는 걸까.
전원을 꺼 버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따뜻했던 외투가 무겁게 느껴지는 것 마냥 따뜻한 햇살이 궁금증과 함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엉킨 실타래처럼 어수선 하게 부초처럼 떠돌던 마음도 점차 제자리를 찾아 안주한다. 가끔은 소중한 휴대폰을 홀대하여 시간을 쫒는 것보다 여유를 찾고 싶어진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없는 농촌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삭막 하겠는가 그처럼 휴대폰 없는 생활은 참으로 인내를 요하는 생활이 되었다.
주머니 속 터줏대감처럼 한눈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이력이 담긴 휴대폰, 개구리 같은 휴대폰이 돌아오던 날, 옛날 빨간 공중전화박스가 아릿한 향수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