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아리수) 2013. 7. 20. 14:25

시루향기-- 임현택

 

 

 연민(憐憫)을 느낀다.

그들의 고통이 그들의 잘못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서 연민을 느낀다.

비극적인 사건이 언제든지 나를 엄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연민을 느낀다.

 저수지 수면 위에도 한낮의 열기는 좀처럼 누그러질 줄 모르던 여름날. 나무그늘에 앉아 있어도 등줄기엔 스멀거리며 땀줄기가 흘러내린다. 보잘 것 없는 대나무 낚싯대에 붕어가 파닥거리며 끈적거리는 정적을 깬다. 손바닥만 한 붕어. 그것도 한 마리도 먹을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고, 옹기로 된 수반에 금붕어를 기르고 있으니 그 금붕어와 함께 기를 속셈으로 검은 봉지에 저수지물을 담아 숨구멍까지 내고 집으로 옮겼다. 생명체가 하나 집으로 들어오니 늦둥이라도 얻은 양 설렌다.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내린 검은 봉지에서 나온 붕어는 옹기수반을 힘차게 누비고 다닌다. 오히려 터줏대감인 금붕어는 한쪽 가장자리로 밀려났고, 붕어가 금붕어를 위협하듯이 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수반을 누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분수가 있지. 제자리마저 내준 금붕어가 공연히 미워지기도 한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새 안녕인지 궁금해 사료를 들고 나가 보니 기세등등하던 붕어가 바닥에 허연 배를 드러내고 뻣뻣하게 죽어 있는 게 아닌가. 저수지 물고기가 옹기수반 안에서 헤엄치는 모습은 강한 생명력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지만 물고기는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는 몸부림 이었나 보다. 내가 아무리 잘해준다고 해도 야생 물고기는 야생일밖에. 야생 습성으로 뛰어 올라 물 밖으로 떨어져 변을 당한 것이다. 결코 붕어의 잘못이랄 수 없는 노릇이다. 또한 우리의 삶을 비겨 표현한 것만 같아서 붕어의 죽음에 연민을 느낀다.

 

 사선을 긋는 빛의 흔적을 바라보며 찻집에 가까이 지내는 분과 마주 앉았다. 그분의 노모는 칠순을 넘겼지만 뇌졸중으로 투병 중이다. 대개의 어머니들 삶이 그러했듯이 노모의 삶은 가시밭길 못지않게 험난했으며, 다행스럽게도 자식들은 밥술이나 먹고 지내며, 주변에서는 효자들이라고 칭송한다. 따라서 칠순을 바라보는 노모를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서울로 모셨다.

 

 자식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라는 말도 있지만 시골에서 상경한 노모에게 서울은 낯설기만 한 객지일 뿐이다. 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하늘, 매캐한 자동차 매연 그리고 자로 잰 듯 반듯하게 포장된 도로와 흙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는 빌딩 숲에서 노모가 적응하기란 만만치가 않았다.

 

 도회의 삶이란 게 아들 내외는 직장으로, 손주들은 학교와 학원으로 내 달리고 있으니 한 지붕 세 가족이다. 하루를 애완견과 시작하여 화초 돌보고, 수족관 돌보다보면 24시간도 모자라는 판인데 서울에서는 백수 아닌 백수의 신세이다. 그러던 중 노모는 목욕탕에서 낙상하여 의식을 잃었다. 그러나 집에 아무도 없으니 저녁 늦게 귀가한 식구들에 의해서나 발견될밖에 길이 없다. 노모께서는 때를 놓쳐 병원으로 후송했으나 이미 반신불구가 되고 말았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명약이라도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말문도 닫아 버린 지금 겨우 눈으로 의사표현을 할 뿐이란다. 결국 노모는 아들네집도 아닌 병원에서 삶의 끈을 부여잡고 계신 것이다.

 

 ‘사랑이 지나치면 사랑 때문에 때론 아플 수 있으리라.’

그랬다 홀로 시골에서 사시는 노모가 자식들은 늘 마음이 편치 않았겠지만 자신들의 입장만 생각했지 노모의 심정을 헤아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홀로 자식들을 위해 일생을 바쳤으니 자식 품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여생은 행복하게 지낼 것이라고 믿었으며 그런 자식들을 욕할 수는 전혀 없다. 그들의 효심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모에게는 우리네가 그토록 불편하다고 궁싯거리는 그곳, 시루향기가 묻어나는 그곳이 행복의 땅이란 걸 쓰러지고 난 뒤에야 알았다며 지인은 찻잔을 연신 눈물로 채우고 있었다. 노모께서 잘못하여 벌어진 일이 아니기에 연민을 느낀다. 노모의 모습은 곧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기에, 나에게도 닥칠 일이기에 연민을 느낀다.

 

 어느 순간 나의 색을 잃고 무지개를 쫓아가는 아둔한 그림자 위에 어둠보다 더 무거운 긴 그림자를 끌고 가는 지인의 모습이 겹친다. 관상용이 아닌 것을 알면서 본질을 잊고 내가 원하는 틀에 맞추어 맞춤형 인간으로 애쓰며 살아온, 가식 투성 인 내 그림자를 어둠속에서 걷어 올렸다. 나에게 연민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