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아리수) 2013. 7. 1. 22:47

 

물과의 전쟁 - 임현택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어깨에 내려앉는 땡볕의 열기가 몽글몽글 등줄기를 타고 허리춤을 적신다. 밤꽃이 지기시작하면서 뜨거워지는 여름이오면 주민들은 농사일 외에 또 하나의 일이 생겨난다.

 

  면단위 작은 마을. 자발적으로 순번을 정하여 마을초입부터 보초를 서고 있다. 상수원을 지키기 위해서다. 생수를 사먹는 요즘 아직도 우리 마을은 계곡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면 믿기나 할까.

 

  충북 괴산군의 보배산과 칠보산으로 둘러싸인 자그마한 각연사 사찰이 있는 계곡이 있다. 마을 상수원보호구역이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하여 보물 제 1295호인 괴산 각연사통일대사탑비 보물 433호인 각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오랜 역사와 더불어 산사의 고요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칠보산 자락의 물소리와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계곡은 신선이 머물 정도로 청청지역으로 산사의 맛과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산사 옆으로 흐르는 상수원은 한여름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1급수에만 산다는 버들치, 피라미, 가재가 서식하고 계곡물을 저장하지 않고 그대로 수로관을 통해 식수로 사용하고 있으니 주민들은 물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산사의 계곡줄기는 사하라 사막의 열기 같은 더위가 온 천지를 녹여도 계곡에 들어서면 찬기가 소름을 돋게 하고, 물밑이 보이는 계곡물은 손발이 시려 오래 버티질 못한다. 그러다보니 당연 피서객들의 방문이 끈이질 않는다.  

 

  사찰을 방문하는 신도들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기에 출입을 허가 하면 간혹 위장신도들이 계곡에 돗자리 깔고 피서를 즐기기 때문에 수시로 순찰을 돌아야만 한다. 사찰신도를 가장하여 출입하는 피서객들과의 마찰, 통제하는 것을 법적으로 허가를 받고 하는 행위인가를 논하는 입씨름, 급기야 몸싸움까지 벌어지는 때가 비일비재하다.

 

  물을 지키려는 주민들의 마음이 가뭄의 논바닥처럼 타 들어가는 것을 저들은 알기나 할까마는. 어떤 이는 입씨름을 하면서도 마을 개울가에 하루를 머무는데 주민들이 왜 저토록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물을 지키는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오염되지 않아 그대로 마실 수 있는 개울물, 돌아 갈 때는 생수통에 수돗물을 받아 가기도 한다.

 

  산허리 돌아치며 계곡을 타고 흐르는 바람이 대롱대롱 발끝에 매달려 순찰하는 발목을 잡아끈다. 늘 다니는 이 길이지만 구리 빛 살갗에 스치는 삼림욕에 취해 솜사탕이 입안에 녹아 버리듯 온몸이 녹아내린다. 순찰하는 것도 잠시 잊고 바위에 걸터앉아 작은 파장을 일으키며 한가롭게 노닐고 있는 소금쟁이 풍경에 빠져들기도 한다. 마을에 사는 우리들도 잠시잠깐 산새와 천상 같은 계곡에 빠져드는데 먼 길 찾아오는 피서객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발길이 잦다보면 오염이 심각해지고 자연이 서서히 파괴되고 있으니 자연을 지키고 싶은 그 마음이다.

 

 얼마 전만 해도 두레로 농사일을 했지만 일손이 턱없이 부족하여 겨우 품앗이로 품을 덜어주고 있는 농사철에 물을 지키기 위해 보초를 서있는 주민들의 마음. 밤꽃이 지는 여름날의 물과의 전쟁은 알밤이 익어 갈 무렵이 돼야 매듭을 짓는다. 그토록 끝없는 전쟁을 하고 있는 이유란 물은 하늘이 내려주신 신의 선물이며 생명이기에 혼심을 다하는 것이다.

--수자원공사 공모전 수상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