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택 시 그리고 수필

2018년 제 5회 충대수필문학상 수상-임현택

임현택 (아리수) 2018. 10. 8. 14:42

 

                  2018년 제 5회 충대수필문학상 수상(임현택)

                  

 

 

               (김홍은 교수님과 함께)

 

 

 

 

 

 

 

 

안녕하세요 임현택입니다.

2018년 9월 28일날 제가 수필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올려봅니다.

 

 

제5회 충대수필문학상 작품

소(牛) - 임현택

 

담 너머로 손을 쭉 뻗은 감나무다. 언제나 반쯤 열려진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마당언저리 감나무이파리 사이로 햇살이 쏟아져 내린다. 외아들 외딸이신 부모님은 뒷집에 외가를 두고 이곳에 신접살림을 차리셨다.

 

한옥 집 외가, 안채와 사랑채, 곡간이 따로 있고 마당한쪽에는 외양간도 있었다. 딸부자집인 우린 동네 아이들과 외가댁이 놀이터였다. 외가와 본가로 폴짝거리며 대문을 뛰어 넘을 땐 꽃무늬 짧은치마가 엉덩이를 살짝 드러내곤 했다. 곳간에 숨어 숨바꼭질 할 때면 생쥐와 눈이 마주쳐 서로 놀라 아우성치며 도망치곤 했다. 안채와 사랑채로 줄달음치느라 콧등에 구슬이 흘러내리고 벌겋게 익은 볼이 탱탱하게 빛을 내면, 대청마루에 누워 홍알홍알 끝없는 이야기가 담을 넘어간다. 노을빛이 마당에 드러눕고 부뚜막에 걸린 무쇠 솥에서 하얀 김이 오르면 아이들은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아쉬운 발길을 집으로 돌렸다.

 

긴 그림자가 외양간에 걸릴 때면 외할아버지는 “워워” 방목했던 어미 소를 앞세우고 송아지는 어미꼬리 끝에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럴 때면 우리도 외할아버지를 따라 “워워” 외치며 외할아버지 물미장을 따라갔다. 어미 소가 둥지를 틀고 산자락에 떨어진 해를 보면 집이 아닌 외가안방으로 앞 다투어 들어갔다. 언제나 구진 할 때면 무엇이든 토해내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아랫목 벽장은 마술저장고였다. 외할머니는 늘 맏손녀인 언니 손에 먼저 주전부리를 쥐어주셨다. 욕심 많은 난 강짜를 부리면서 먼저 달라고 악을 쓴다. 그럴 때면 무명치마를 걷어 올려 고쟁이에서 사탕을 꺼내 살며시 손아귀에 쥐어주셨고 난 금 새 곰 살스럽게 변하곤 했다. 욕심으로 눈도 마음도 가리다 보니 언제나 내손에는 주전부리가 가득했다.

 

첫닭울이보다 외할아버지 기침소리가 먼저 아침을 연다. 식전 외양간 옆 외할아버지 헛기침에 장단이라도 맞추는 냥 어미 소도 워낭을 딸랑딸랑 흔들어대며 음매, 음매 목청을 다듬는다. 외할아버지의 엄지손가락으로 가족보다 언제나 일순위인 소, 보수적인 외할아버지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빗질을 해주면서 나지막한 음성으로 늘 소에게 당신의 일상을 토로하시면서 당신의 분신처럼 대했고, 외려 가족들보다 더 정감 있게 애정을 쏟아 부으며 하루를 열고 닫는다.

 

사랑채 대청마루 창을 활짝 여시곤 곰방대에서 솔솔 연기 꽃을 피우시며 하루를 여는 외할아버지. 순 담뱃잎을 곰방대에 꾹꾹 눌러 담아 불을 붙여 하얀 연기를 뿜어내면 신기하지만, 어찌나 독하던지 그런 외할아버지 옆에 가기를 싫어했다. 당연 외할머니 치맛자락에 매달려 더위를 달랬고 늘 감나무그늘 들마루에 누워 외할머니의 구수한 옛날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늘로 훨훨 날아간 이야기는 솜뭉치 같은 구름 속에 천상을 만들어 쉬어가고, 천둥치고 파도치며 거센 물살이 잔잔한 강에서 무지개를 만드는 옛이야기 속에 빠진 우린 어느새 잠속으로 솔솔 젖어든다.

 

아들을 낳으면 비단이불위에서 놀게 하고, 딸이면 맨바닥에서 놀게 했다는 구전도 있던 그 시절 나부대는 딸들이 어여뻤을까! 어쩜 어머니는 딸부자로 죄인처럼 사셨을 게다. 그런 딸을 위해 외할머니는 어머니를 더 품었던 것 같다. 자연스레 유년시절을 외가에서 지낸 우린 어머니보다 외할머니 품이 더 좋았던 그때가 아련하게 밀려온다. 요즘 아이들은 고쟁이나 구경했을까? 한옥의 아랫목이나 알까?

 

언제부터인가 나 역시 염색약으로 새치를 감추는 나이가 되었고, 오래전 땅속으로 묻혀 진 외가 집의 한옥은 검은 돌담만이 감나무그늘아래에서 세월을 달래고 있다. 텃밭으로 변한 집터엔 감자 꽃이 하얗게 손을 흔들고 더 이상 개울가엔 노니는 소도 볼 수 없고 방천도 콘크리트로 단장돼 있다. 구불구불 한 논두렁, 밭두렁도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 잡을 뿐 농지개량으로 바둑판이 된 전답들은 추억을 삼켜버렸다. 신작로는 반듯한 아스팔트로, 농수로는 자동수문을 달아 현대화 되었다. 아담한 초등학교는 이미 폐교 되었으며 이젠 모두가 가슴속에 추억으로 자리 잡았을 뿐이다. 흔적을 찾을 길 없음에 포도주 같은 달콤함보다는 곡주가 그리워 허전한 마음을 끌어안아 올렸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면서 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뒤뜰 장독대엔 깨진 독이 덩그마니 세월을 먹고 있다. 노구의 아버지 등도 소등처럼 구부정해지고 우둔한 발걸음도 소걸음처럼 느릿느릿해지셨다. 그럼에도 ‘갈매기도 제 집이 있다.’며 여전히 홀로 고향을 지키고 계시는 아버지, 소처럼 커다란 눈도 강렬했던 눈빛도 희미해지고 점점 허옇게 변하고 있는 눈썹은 체한 듯 명치끝을 아프게 찔러댄다.

 

지루한 긴 폭염, 대청마루에 누워 서까래 안쪽에 진흙으로 쌓아 올린 몽글몽글한 집속에 제비식구들의 조잘거리던 고향이 더 그리워진다. 혹여 불어오는 실바람에도 고향냄새가 묻어오지나 않을까. 메아리로 다가오는 고향, 시골집 뒤꼍에 낡고 낡아 부서져 내린 부리망이 애처롭게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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