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만든 여행지에서

*도편수의 슬픈 사랑이야기 - 전등사

임현택 (아리수) 2013. 6. 12. 22:00

* 도편수의 슬픈 사랑이야기 *

 

강화도는 갈 때마다 매번 신비함을 안겨주는 섬이다. 많은 유물 유적지가 있지만 그 중 전등사의 대웅전이 발목을 잡아끈다.

전등사는 조선선조 광혜군 6년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7년만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특히 대웅전 처마 밑에 나부상이 가장 이상적이다.

 

나부상은 공사를 맡았던 목수의 재물을 가로챈 주모의 모습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오는데, 재물을 잃은 목수가 주모의 나쁜 짓을 경고하고 죄를 씻게 하기위해 발가벗은 모습을 조각하여 네 귀퉁이 추녀를 떠받치고 있는 여인의 나체형상인 나부상이다.

당시 마니산에 전등사 건립 공사가 한창이었다. 십여명의 전문공들이 엄격한 규율에 따라 정성껏 사찰을 짓고 있었다.

사찰을 건립하는 공사이기에 시작하는 아침에는 양 손을 정화수에 깨끗이 씻고, 승려들과 함께 간단한 예불을 드렸다 그리고 공양을 들 때도 승려와 마찬가지로 육류와 술 등을 일 체 금하는 절 음식을 먹었다.

 

그러나 힘이 생명인 목수들에게 제한 금식이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힘든일을 하는 분들은 으레 음주가무를 즐기는 법.

이 공사의 책임을 맡은 도편수라는 사람도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도편수는 눈에 띄게 손놀림이 노련한 재주꾼이지만 손재주 못지않게 주색에 능한 사람이었다.

그런 술꾼에게 사찰의 규율이 따위는 대수가 아니었다. 공사에 착수한 지 일주일째 되던날, 도편수는 몰래 산 아래에 있는 주막으로 내려갔다.

 

주막에 지금으로 말하면 얼굴마담이 있었다. 그의 미모가 천하절색이지라 도편수는 그동안 주색에 굶주려 있던 터라 단숨에 술병을 비웠다. 살갑게 달라붙는 여인을 잊지 못해 틈 날 때마다 도편수는 주막을 찾았다.

도편수는 진정한 한량인지라 내외적으로 완벽하게 일에 열중했고 재주 많고 성실한 목수였기에 주위사람들 기대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완벽한 도편수는 끊임없이 주막 요부와 내통했고 심지어 그간 번 돈도 맡길 정도로 정도 깊어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도편수는 주막을 찾았는데 그 여인이 보이지 않았다. 주모 말에 의하면 간밤에 또 다른 사내와 눈이 맞아 *도편수의 돈을 가지고 야반도주를 했다는 것이다.

도편수는 지난 수개월동안 쌓아온 정과 쏟아온 정성이 분노로 치밀어 올랐다.

복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목수는 그길로 곧장 공사장으로 달려가 그녀와 흡사한 모습의 나체 여인을 깎아 추녀 밑에 달았다. 죽어서도 옷 한 벌 걸치지 말고 무거운 추녀를 떠받치며 회개하라고 말이다.

 

당시 복수에 불타 만든 나체 형 나부상조각 현재 예술로 승화되고 전등사 대웅전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며 조선중기 이후 건축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받고 있다.

비록 주색에 눈이 어두워 모든 것을 잃은 도편수의 아픔이 예술조각으로 후세에 빛을 받고 있으니 우린 그의 아픔을 위로하심이 어떨까.

 

 

* 도편수 - 목수의 우두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