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3월 = 봄이 오는 길목에 경기도 남한산성에서
== 남한산성(南漢山城)
== 남한산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축산성.
신라 문무왕 때 처음 성을 쌓고 이름을 주장성이라 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일장산성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 온조왕의 성이라고 전하기도 한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은 동·서·남문루와 장대·돈대·보 등의 방어시설과 비밀통로인 암문,
우물, 관아, 군사훈련시설 등이다. 1963년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오늘날까지 여러 차례 보수를 하고 1971년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남한산성의 등산코스 알아보기
1코스
거리 : 3.8km 소요시간 : 80분
산성종로(로타리) - 북문(0.4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산성종로(로타리 0.7km)
2코스
거리 : 2.9km 소요시간 : 60분
산성종로(로타리) - 영월정(0.4km) - 숭열전(0.2km) - 수어장대(0.6km) - 서문(0.7km) -
국청사(0.1km) - 산성종로(로타리(0.9km)
3코스
거리 : 5.7km 소요시간 : 120분
역사관 - 현절사(0.1km) - 벌봉(1.8km) - 장경사(1.5km) - 망월사(1.1km) - 지수당(1.0km) -
관리사무소(0.2km)
4코스
거리 : 3.8km 소요시간 : 80분
산성종로(로타리) - 남문(0.7km) - 남장대터(0.6km) - 동문(1.1km) - 지수당(0.5km) - 개원사(0.3km) -
산성종로(로타리(0.6km)
5코스
거리 : 7.7km 소요시간 : 200분
역사관 - 동문(0.6km) - 동장대터(1.1km) - 북문(1.6km) - 서문(1.1km) - 수어장대(0.6km) -
영춘정(0.3km) - 남문(0.7km) - 동문(1.7km)
== 동문 ==
동문은 가장 사용빈도가 많았던 문으로, 성의 남동쪽에 있다.
다른 이름으로는 좌익문(左翼門)이라 하였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동문이 좌측이 되므로 좌익문이라 한 것이다.
== 송암정 ==
성 밖의 동문에서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오르면 바위절벽과 그 사이에 말라 죽은 소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가 하산하여 이 곳을 지나는데 남자 수명과 기생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때 술에 취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그 사내에게 심오한 불법을 설파하였다.
이때 그 무리 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 내려 자결하였다.
이 바위에 서 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 벼슬을 내렸으므로 '대부송' 이라고 부르는 그 소나무이다.
송암정은 우리말의 '솔바위 정자'라는 뜻이다.
== 포루 ==
대포를 쏠 수 있는 시설을 포루(砲壘)라고 한다.
임진왜란은 조선의 진법전술에 결정적인 변화를 초래하였다.
종래의 전술은 궁시류에 의존하였지만, 조총과 화포의 위력을 경험하고 난 이후
조선도 신무기인 조총과 화포를 주로 하고, 여기에 창검과 궁시가 보조하는 전술개념으로 전환 하게 되었다.
== 암문 ==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의 일종이다.
암문은 이름 그대로 비밀스러운 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성문보다 작게 하고,
문루나 육축 등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을 하지 않았다.
암문의 기능은 성내에 필요한 병기, 식량 등 항쟁물자를 운반하고 적에게 포위 당했을 때 적의 눈에
띄지 않게 구원요청은 물론 원병을 받고 역습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여장 ==
여장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게 만든
시설을 말한다. 남한산성의 여장은 다른 성곽에서 보기 힘든 전돌로 축조한 평여장이다.
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와 성벽을 바라니 실로 어마어마한 외벽이었습니다.
== 북문 ==
북문은 성곽 북쪽의 해발 365m 지점에 있으며 전승문(戰勝門)이라고 한다.
북문을 나서면 계곡으로 난 길을 따라 상사창동으로 이르게 되는데 조선 시대에 수운으로 옮긴 세곡을 등짐으로
이 문을 통해 산성 안으로 운반하였다.
남한산성은
청량산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지기 때문에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걷는 코스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뉘지만 구간구간 샛길이 많아서 각자의 능력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특히 남문에서 수어장대를 거쳐 북문에 이르는 2.8 km 구간은 남한산성을 대표하는 걷기 코스이다.
== 서문 ==
서문은 산성 북동쪽에 있는 문으로 다른 이름으로는 우익문(右翼門)이라 한다.
광나루나 송파나루에서 가장 가깝지만, 경사가 급하여 당시 물자를 수송하던 우마차 등은
이 문으로 드나들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장대 ==
본래 장대는 전투시 지휘가 용이한 지점에 설치한 지휘소다.[38] 현대와 달리 장군이 직접 전장을 관찰하며
지휘했던 당시에 지휘소의 역할을 하는 장대는 성내에서 가장 높고, 지휘와 관측이 용이한 곳에 설치하였다
수어장대는
전면에서 볼 때 크고 작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기둥을 세우고 내부에는 널마루를 설치하여
단조로운 난간을 둘렀다
== 무망루 ==
무망루의 뜻은 '무망' 즉 '잊음이 없다', '잊을 수 없다' 는 뜻이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이 삼전도에 나아가 청태종에게 세 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이마를 세 번씩 조아려야 했던 삼배구고두의 치욕,
그리고 청나라의 심양에 끌려가 8년 동안이나 볼모로 잡혀 있다가 돌아와 북벌을 꾀하였으나
끝내 그 한을 풀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임금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으로 영조께서 이름한 것이라고 한다.
남한산성은 가족들과 손에손잡고 무난히 산책할 수 있는 곳입니다.
특히 아름다운 소나무가 많이 있어 사계절 모두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 남문 ==
남문은 성의 서남쪽에 있는 문이다. 남문은 정조 3년(1779년)에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되어
지화문(至和門)으로 이름 붙여졌다.
또 남문은 4대문 중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있다
빈가지 사이로 노을이 물들고 있는가 싶더니
산성내에 군데군데 쉼터에서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로
즐감하다 보니 시간이 저 만치 달아나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